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되었지만 내가 10대 때는 싸이월드가 유행이었다. 글이나 사진을 열심히 업로드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배경 음악 설정만큼은 심혈을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얼마나 감성적인 사진을 찍느냐 혹은 피드의 내용을 어떻게 통일하느냐가 그 사람의 힙함의 정도를 결정했다면 그때는 무조건 배경 음악이 힙의 정도를 결정했다. 아무곡이나 함부로 대문에 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경음악을 선정하는 기준은 천차만별이었다. 최신곡이 나올 때 마다 바꾸는 친구들도 있었고 자신의 상태를 대변해줄만한 노래, 예를들어 이별할 때는 슬픈 곡 연애를 시작할 때는 달달한 곡을 걸어두는 친구도 있었다. 프리스타일이나 다이나믹듀오처럼 힙합이 점점 대중화 될 때 였기에 언더 그라운드에서 막 올라온 믹스 테잎들을 선곡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동방신기, 소녀시대, 원더걸스처럼 그 시절 최고의 아이돌의 덕질을 어김없이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밴드의 곡을 늘 배경음악으로 선정해두곤 했다. 친구들은 이런 노래 누가 들어? 하는 반응을 자주 보였는데 그런 부정적인 반응을 은근 즐겼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나만 아는 곡 같은 기분을 받을 때면 10대의 자의식이 과잉해질 때가 많았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나같은 애들을 홍대병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듣고 한참이나 웃었다. 왜냐하면 진짜로 난 그때만해도 2000년대 초 중반의 홍대 밴드들의 앨범과 멤버들을 줄줄 외우고 다니는 것을 일종의 훈장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대문을 지켰던 노래는 언니네 이발관의 산들산들이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어딘가 남아 있을거야”. 이석원 아저씨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나릇한 드럼 비트. 어딘가 흐릿한 가사는 10대의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외곬수 같은 그의 이야기는 왠지 나같기도 했기에 나는 산들 산들이 포함되어 있는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앨범을 정말로 많이 들었다.
어느정도로 많이 들었냐면 앨범의 모든 가사를 줄줄 외울 정도였고 기타 코드를 외우진 못했지만 대충의 기타 루프는 외울 정도였다. 악기를 연주하지 못함을 개탄스럽게 생각했지만 그의 가사관을 이해할 정도의 문해력은 갖추고 있음에 안심했다. 그리고 나의 팬심은 비록 밥먹을 돈이 없어서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야하는 대학생 형편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떡 하지 자리잡은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망설임 없이 살 정도 까지는 되었다.
책의 내용은 음악만큼 충격적이었다. 지금이야 이런류의 에세이들이 즐비하지만 그때만 해도 너무 신선한 구성과 관점이었다. 사실 이 책 이전에도 많았을지도 모른다.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 이전에 미선이, 델리스파이스, 롤러코스터와 같은 한국 모던락의 기라성들이 줄줄이 있었던 것 마냥 말이다. 하지만 내 세상에서는 처음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세련되게 적어놓은 글 묶음을 마주친 것이 말이다.
읽으면서 줄을 얼마나 많이 쳤는지 나중에는 줄치기를 포기하는 지경이 다다랐다. 어차피 왠만한 문장은 다 좋아하는데 굳이 줄 칠 필요가 있을까. 특히 사랑에 대한 그의 관점은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바이블 같았다. 강산이 한 번도 더 바뀐 지금에 와서 그의 문장들을 보면 너무나 회피적이고 불안정해서 읽고 있는 내가 불안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그때의 나는 우울과 불안 그자체였으니 내가 비정상이 아니라는게,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세상에 있다는 것이 안도가 되었다.
이어달리기라는 챕터는 아직도 처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랑이란건 앞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뒷 사람에게 건네는거다 라는 염세적이기 짝이 없는 문장 앞에서 꽤 많이 울었다. 그땐 왜 그렇게 연애가 어려웠을까. 가시공 같은 사랑을 어떻게든 이어가고 붙여가고 싶은 내 마음을 잘 표현해준 문장 같았다. 그 외에도 사랑과 이별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경험들은 30대 어른들만의 혹은 성숙이라는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쿨’함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쿨함이 내 인생의 난이도를 꽤 높게 만들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좀 짜증이 난다.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앨범은 나에게 음악을 하고 싶게 만들게 하진 못했지만 책은 달랐다. 나는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깊게 느꼈다. 나의 감정을 이렇게 끓어오르게 만든 그의 문장을 나도 써보고 싶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실제로 의자에게 나를 당장 앉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함에 있어서 항상 제일 먼저 떠올리는 레퍼런스가 되었다.
지금도 이석원만큼 솔직하고 신선하게 쓰고 싶다. 그리고 용기있게 쓰고싶다. 최대한 느끼하지 않고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기. 찌질해서 감춰두고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을 ‘팍’하고 써버리는 객기를 나도 닮고 싶다. 심지어 최근에 작업한 2인조에서는 자신이 십여년 전에 작업했던 책의 내용들 중 많은 부분들이 속칭 빻았는지에 대해서 사과하며 내용을 수정하기 까지에 이르렀다. 팬들도 덕심으로 눈감아주던 부분을 본인이 먼저 매맞는 심정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나는 어찌되었든 자신의 잘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수정하려는 그의 태도가 멋져보였다.
글쓰기의 기준이 되어버린 이석원의 노래를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될 때마다 꺼내 듣는다. 산들산들이나 아름다운 것 같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무슨 문장을 써도 괜찮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이나 누구나 아는 비밀을 듣고 있으면 내가 어떤 내용이든간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분명 5집 1번 트랙을 재생했는데 벌써 6집의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거울속의 나에게 다짐하듯 했던 말 다시는 널 보내지 않겠다.” 왠지 이 글의 마무리를 이석원처럼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면 왠지 그를 닮을 수 있을 것만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