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될 문장들

by 박모범

이제 더 이상 닭다리를 뜯고 있을 순 없었다. 맥주는 손에서 놔버린지 오래다. 너무 더워서 숨이 막혔지만 참아야만 했다.경기는 시작한지 3시간 만에 스코어 9대 8, 주자 만루 상황. 마지막 타자가 저벅저벅 걸어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누구! 최! 강! 삼! 성!” 조용했던 경기장에 누군가가 소리를 쏟아 부었고 기름통에 떨어진 성냥 마냥 분위기는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뽕짝같은 응원가를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함께했다.


원 스트라이크. 타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응원 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나올때가 되었는데,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가진 기운을 그에게 모두 밀어줘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 같았다.


투 스트라이크. 같이 간 친구들과 손을 꼭 잡았다. 제발 한 번만 부탁해. 손 끝이 저릿해졌다. 목소리는 이미 나오지 않기 시작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뒤에 있던 아이는 초조함에 울기 직전이었고 옆에 아저씨는 연거푸 맥주를 마셨다.


애간장이 녹아 없어진다는 말, 이런 느낌이었구나. 삽십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도대체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어렵다. 하나가 되었다는 동질감? 결론을 예상 할 수 없음에서 오는 짜릿함?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10대, 20대, 아니 어제까지의 나는 절대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차원의 행복이라는 점이다. 어제까지는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스웠다.


안타깝게도 영화같은 반전은 없었다. 타자는 삼진을 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그러나 관중석의 분위기는 쉽사리 식지 않았다. 야구장 마스코트와 사진을 찍는 7살 어린아이도, 마지막까지 맥주를 마시며 팀을 응원하던 노부부도, 하이라이트 장면을 몇 번째 설명하고 있는 청년들도 각자의 이유로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상황도 상관없이 행복을 공평하게 나눠가진 사람들 같았다.


서른이 되면 차라리 기형도처럼 요절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겉멋처럼 하던때가 있었다. 삶을 너무 사랑해서 더 많이 미워할 때 였다. 그렇기에 불안한 내가 자라 살게 될 미래는 압도적으로 두려운 존재였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나이 들어도 지금이랑 비슷하게 행복하대. 다만 모양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그 나름의 즐거움이 분명 존재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할 하지말자. 그냥 지금 행복한거 하고 살면 그때도 행복할거야.”


그때는 감흥도 없었던 말이 왜 몇 년이 흘러 지금에서야 이해가 될까. ‘아 이게 그 사람이 했던 말의 의미구나.’ 마음 속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당신의 문장이 나의 삶에 툭하고 뿌리를 내린 기분이었다. 든든한 나무가 될 것만 같은 문장. 나는 앞으로 이 문장에게 자주 신세를 질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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