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온통 그것 생각 뿐이고 모든 것이 그것과 연관되서 떠오른다. 그 전까지만 해도 별 것 아닌 것들이 이제는 세상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일기예보에서 먼 바다 파도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나처럼 말이다. 일기예보 뿐이겠는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파도 상황도 수시로 체크한다. 그러다 아주 작은 파도들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가슴이 쿵쾅쿵쾅하고 뛴다. 아 가고 싶다. 지금 당장 떠나고 싶다. '서핑'을 막 사랑하게 된(전적으로 짝사랑이지만) 나는 이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서핑'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건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나는 정말 정말 운동을 못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9와 숫자들의 문학소년 가사처럼 나는 체육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픈 아이였다. 머리만 아프면 다행인데 대체로 마음도 함께 아팠다. 체육시간을 앞둔 아침이면 기분이 축 쳐지기 일쑤였으며 우울감에 학교도 가기 싫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의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남학생들의 체육이란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적자 생존의 정글. 공 하나를 차지하기 위한 피 튀기는 전쟁. 나는 늘 그 전쟁의 패배자의 역할을 자초했다. 패배자가 되려면 전장에 들어가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군대 징집을 피해 산 속으로 짱 박힌 반동분자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늘 운동장 가장자리 그늘이 만들어지는 어느 곳에 앉아서 그들을 관망하듯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그래도 공 하나 던져주고 너희들의 야만성을 마음껏 발휘하라는 선생님은 오히려 덜 괴롭웠다. 가장 괴로운 순간은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선생님들이었다. 공을 여기서 저기까지 드리블 해서 오라던지 아니면 어느 지점에서 달려와 슛을 넣어 보라는 등의 과제는 공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나는 늘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구구단도 못하는 미적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럴때마다 나는 늘 체육에 실패하는 사람이었다.
" 너는 그냥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운동 못해도 된다. 소질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니. 그냥 좀 쉬어라. "
타고난 운동 신경도 없고 비만에 가까운 몸을 가진 나는 선생님의 말을 100% 신뢰했다.
역시 나는 체육이랑 맞지 않아.
그렇게 믿고 몇 십년을 살았다. 결국 체육 알러지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어떻게든 운동을 해야 하는 순간을 요리 조리 피해다녔다. 심지어 무시무시한 군대축구도 나를 운동의 길로 빠져들게 하지 못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첫 날 어김없이 선임들은 나를 축구 경기장에 세워 두었다. 어이 신병 공 한 번 차봐.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간 신병이었기에 그의 말대로 공을 뻥하고 찼다. 정확히 말하면 '뻥'하고 찬 줄 알았다. 내 발끝에 맞은 공은 또르르 힘 없는 물줄기처럼 흘러 나갔고 주위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야 너 공 한 번도 안 차봤냐?. 네 그러씀다. 학교 다닐 때 안 해 봤냐? 네 그러씀다. 너 무슨 발 잡인데? 모름다. 장난하냐? 아님다. 진짜로 모르냐? 네 모름다. 진실성있는 슈팅은 나의 말을 증명해주기 적절했기에 내 군생활의 모든 체육 활동은 여기서 끝이 났다.
운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처음으로 '서핑'이라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년전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혼자서 여행지에서 할 것이 마땅치 않다. 자아를 찾게 되었다거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지루한 현실을 떠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대부분의 시간을 커피를 마신다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떼웠다. 그 날도 나태한 하루를 즐기기 위해 해수욕장에 자리를 펴고 누워서 맥주를 마시려 하는데 아주 건강한 남녀들이 이상한 판떼기를 하나 들고 바다에 풍덩풍덩 빠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판 위에 누워 먼 바다로 허적허적 걸어가다니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수표처럼 떠다니던 그들은 파도가 오면 멋지게 일어나서 미끄러지듯 육지로 나왔다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무의미해 보이는 그들의 반복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이 차올랐다. 아주 좋아하는 놀이 기구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기쁨 같은 것 같기도 했고 아주 조용한 노인들의 낮은 잡담 소리 같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이전까지 느낄 수 없는 움직임에 대한 갈망이었다는 점이다.
그 다음날 바로 나는 서핑 강습을 들었다. 남은 2박 3일을 나는 서핑에 투자하리라 마음을 먹고 시작했지만 겨우 하루 밖에 하지 못했다. 하루 하고 팔을 들지 못할 정도의 근육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하루도 하루 종일 물 먹고 끝났다. 강사님께서 옆에서 열심히 밀어 주셨지만 정말 그의 노력이 죄송할 만큼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같이 수업을 들은 사람들 중 몇 명은 아주 작은 파도를 잡아 탈 정도로 성장 했지만 나는 어림 없었다. 학창시절과 마찬 가지로 이 곳에서 가장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파도 타는게 싫지 않았다. 아니 너무 좋았다.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고 나의 노력으로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성취할 수 있는 이 행위가 너무 좋았다. 때로는 아무 것도 안하고 보드 위에 둥둥 떠다니며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수 있는 순간이 주는 적막감이 나를 휘감았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 같았다.
육지로 돌아온 뒤 나는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 파도를 타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바다까지 2시간 남짓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점 부터 사회 초년생으로서 직장에 적응하다보니 주말이면 기절한다는 점 까지 몇 가지 제약을 이기지 못한 채 늘 마음 한 켠에 버킷 리스트로 남겨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올 가을 처음으로 작은 차 한대가 생기면서 제일 먼저 서핑을 다시 시작했다. 덜덜 떨면서 고속도로를 엉금엉금 기어서 기어코 파도를 타러 갔다. 열심히 탔다. 정말 정말 못하지만 열심히 탔다. 100번 테이크 오프를 하면 1번 일어날까 말까 했지만 그것도 즐거웠다. 아무도 내가 얼마나 잘타는지 관심도 없는, 그저 나만이 아는 성취를 해내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서 회사를 다니면서 아둥바둥 노력하면서 받은 괴로움들이 파도에 조금씩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아주 원초적인 즐거움을 알게 된 셈이다.
겨울에도 틈이 날 때 마다 파도를 탔지만 (슈트를 입고 타지만 춥다. 진짜 춥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초보 딱지를 떼지 못했다. 탈 수 있는 파도와 탈 수 없는 파도를 겨우 구분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서는 것보다 물 먹는 편이 훨씬 많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이 빠질 것 같이 아파 뭍으로 나올 때면 늘 아쉬움이 든다. 아 저건 탈 수 있지 않을까. 괴롭고 힘들때가 많지만 단 한 번에 파도타기가 나를 다시 먼 파도로 나아가게 한다. 친구들은 그 목적 없는 행위의 반복을 왜하냐고 묻지만 나는 파도타기의 묘미가 거기에 있다고 반박한다. 목적 없음. 그저 행위의 반복이 주는 단숨함의 즐거움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바다가 따뜻해지면 이제는 마음껏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 체력과는 상관없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 필요 없이 조금 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어린왕자가 오기 몇 시간 전부터 설레기 시작하는 여우 마냥 봄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나는 기온과는 상관없이 바다로 편하게 나갈 수 있는 그날을 설레며 기다린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부사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면 나는 분명 이 스포츠를 사랑하게 된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