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조정치 미쳤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가 진짜 아티스트다 싶었다.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예술가의 덕목을 새로운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믿는 나는 이 노래가 싱어송라이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어떤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위로가 될까
이해한다는 말
함께 울어도 이 밤 지나면 잊을 말
위로해 줄게
사람이 다 그래
좋은 날만 모여 서롤 위해 기도해
위로가 될까
쉬어 간다는 말
등받이 없는 의자 위 걸친, 짧은 쉼
위로해 줄게
삶은 길지 않아
전화기 약정 몇번 지나면 끝날 삶
위로가 될까”
일상에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슬픔에 잠겨 목 끝까지 숨이 차버린 사람들. 콕 하고 찌르면 눈물이 주루룩 흐를 것만 같은 위태로운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항상 망설이곤 한다. 내가 하는 이말이 너에게 제대로 가닿는게 맞을까. 어떤말을 해도 지금의 고통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사람들 앞에서 내 말이 과연 의미있을까.
슬픔은 언제나 지나간다. 나는 10년전, 아니 1년전의 오늘의 내가 어떤 이유로 조금은 슬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슬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슬펐는지가 아니라 슬펐는지 아닌지 사실 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면 ‘다 잘 지나갈거야’ 라는 말을 듣는게 좋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정답지를 오답과 함께 내미는 것도 ,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상황을 분석하는 말도 싫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 잘될거야 하는 무지성 긍정도 거절한다. 조금은 무책임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말이 제일 좋다. 거기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슬픔의 속에서 같이 서 있어 준다면 더 좋을거고.
사실 위로에 관한 현실적인 고민을 담은 이 노래에서 내가 가장 심장이 덜컥 내려 앉은 부분은 내용이 아니다. 전화기 약정 몇 번 지나면 끝날 삶 이라는 가사다. 생각해보면 2년 정도 사용하고 나면 교체하고 마는 휴대폰은 무엇보다도 시간을 세는 단위로 너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게 딱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점점 교체 기간이 길어지지 않는가? 이런 특성은 묘하게 나이듦의 한 면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인생의 유한함을 휴대폰 약정으로 표현하는 신박함에 무릎을 탁 하고 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문장 앞에 설 때면 ‘아 이거 나도 생각했 건데! 아쉽다, 내가 한 발 늦어버렸어’ 하고 치기 어린 자존심을 부릴 때도 있건만 이번에는 완전히 넉다운 되고 말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휴대폰 약정을 보면서 삶의 유한함 따위를 생각하지는 못할 일이었다.
휴대폰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매일, 그리고 어디든 들고 다녀야 한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전자 기계이며 철저하게 나를 위한 물품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철저하게 남을 위한 물품이기도 한다. 삶에서 지쳤다고 할때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휴대폰 끄기인 사람이 많을 정도로 가장 멀리하고 싶으면서도 한 대에 몇 백만원을 투자할 정도로 욕망을 자극하는 물품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휴대폰은 연애와 가장 관련이 깊은 물건이다. 공교롭게도 휴대폰 교체 시기와 연애의 시작과 끝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시기와 맞지 않은 연인도 있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들은 아주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었 뿐 사랑을 했냐고 되물어 본다면 ‘글쎄... 그정도는’ 이라고 대답할 정도의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휴대폰 2개의 교체 시기를 함께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 교체 시기가 둘이 잠깐 헤어져 있는 기간이었다.
평소에 누군가랑 꾸준히 연락을 하는편이 아닌 나는 연애를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이 금방 눈치를 챈다. 보통은 가방안에 쳐박아 둔 채 잘 꺼내지도 않을 휴대폰을 신줏단지 모시듯 꺼내두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없을때는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싶다. 아침이면 서로의 출근을 응원해주고 짬이 날때면 일상을 공유하고 저녁이면 오늘은 어떤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연애의 모습이기에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끼고 살 수 밖에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핸드폰을 놓지 못함은 불안함에서 기인하는 행동이다. 사랑은 나에게 뜨거움과 열정과 행복함의 단어이면서 동시에 불안함과 두려움과 괴로움의 단어다. 내가 연애함을 늘 열렬히 사랑하면서 열렬히 미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간 그 사람이 날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익숙하지 않은 행복이 어느 순간 깨어날 꿈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행복감의 뒷면에 늘 따라 붙는다.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그리고 기꺼이 당신의 시간을 나에게 내어준다면 최소한 지금은 나를 떠나지 않을거라는 안심이 든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시작하면 휴대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한다.
심리학책을 보다가 나같은 사람이 엄청 많다는 것을, 심지어 이러한 성향이 심해지면 붙이는 병리적 이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안형 애착. 책장을 덮고 나서 계속되는 연애의 실패가 당신이 똥차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똥차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불안해하는 나에게 뿌리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기에 말이다.
“야 누구도 널 구원할 수 없어. 연인도 부모도. 그런건 그냥 셀프야. 삶은 니가 사는거라고.”
말도 안되는 연애와 헤어짐을 반복하는 나에게 친구가 해준 말들, 다양한 책들이 나를 진단하는 문장들은 언제나 괴로웠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서 언제나 타인이 부여하는 의미로 삶의 의지를 다지는 나는 어쩌면 사랑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쉬이 떨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핸드폰을 바꿨다. 의도한것은 아니였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바꾼 핸드폰을 들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속상했고 이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사랑이 모든것을 해결해줄거라 믿는 사랑 만능주의자는 아니지만 삶에서 사랑을 뺀 다면 어떠한 의미도 없다라고 믿는 편이라 이러한 나의 성향을 꼭 해결해야만 했다.
닥치는 대로 읽고 영상을 봤다. 사랑과 관련된 콘텐츠에서 시작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도 봤고 소설도 읽었고 시도 외웠다. 자기 계발서를 보기도 했고 아주 오래된 고전도 읽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타인이 주는 사랑으로 자신을 정의하지 말기를 권했다. 사랑을 받는 것 보다 사랑을 주는 것에 방점을 찍으라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인간 이외의 내가 사랑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철저하게 피드백이 없는, 혼자 주는 것으로 끝나는 그런 것들을 찾아 헤맸다. 요가와 서핑을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을 것이다. 상담도 꽤 주기적으로 받았다. 선생님과 긴 회기 동안 안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지금 이 몇 줄로 지난 노력들을 요약하자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든다. 이 모든것이 사랑하기 위한 , 또한 받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조금은 낯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랬다. 그만큼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 었으니까.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했던 시간들은 빠르게 지나갔다. 사랑이 없어 위로가 필요했던 고난한 밤들은 조정치의 노래 처럼 쉬이 잘 흘러갔다. 새로산 휴대폰도 차근차근 낡은 것이 되었다. 그 시간들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결국 다시 핸드폰을 달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버라이어티한 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불안하고 싶진 않았는데 30년의 삶의 관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불안 앞에서 늘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점이다.
“나의 불안은 이 관계와 연관이 없다. 나는 이 사람이 좋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에 집중하자.”
수 많은 활자와 영상, 그리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알려준대로 그 사람에게 나는 무엇인가를 갈구하거나 요구 하는 사랑을 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있을 때 만큼은 아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한 평의 집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사랑의 이름을 열정이 아니라 평안으로 바꿔 달아 보려 한다.
하지만 아마 세상은 늘 그렇듯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자주 껴안기는 너무나 뜨겁게 사랑할 것이고 고집스럽게 미워할지도 모르겠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사랑에 노련한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아, 언제쯤 나는 사랑함에 고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또 초조한 마음으로 핸드폰 액정을 켜고 또 다시 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