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함 뒤에 숨겨둔 마음
쌀밥 짓는 냄새가 풍기는 부엌에 서서, 젖은 앞치마에 손을 덧닦던 날이 떠오른다.
거실엔 어린아이 목소리가 섞인 TV 프로그램 소리가 흘러나왔고, 나는 철제로 된 식판에 실험하듯 만든 반찬을 올리며 아이들이 잘 먹어줄까 고심했다.
그때 아이들이 TV가 틀어진 채로 쪼르르 달려와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면, 나는 광대가 솟구친 채로 바라보다가 식판을 싹싹 비운 아이들에게 엄지를 치켜드곤 했다.
그게 나의 뿌듯한 일상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기억이 전부 회오리처럼 생긴 이상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릿속에 그 장면을 다시 그려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져 버린 것 같다.
지금은 그 시절의 향기와 냄새가 사라졌다.
대신 비릿한 냄새와 함께 아이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부엌을 가득 채운다.
"아, 먹기 싫다고."
"알아서 먹을 게."
"쫌. 잔소리 좀 그만해!"
"듣기 싫어."
문을 쾅 닫는 소리. 식탁에 놓인 식판은 그대로다. 손도 대지 않은 채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엄지를 치켜들어 주던 그 작은 손들이, 이제는 나를 밀어낸다.
"맛있어요"라고 말하던 입에서, "듣기 싫어"가 튀어나온다.
나는 식탁 앞에 혼자 앉아, 식어가는 밥을 바라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사춘기라는 단어는 그저 반항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저 냇가에 졸졸 흐르는 물처럼 흘러 간 것 같은데 내 착각인 걸까. 아니면 우리엄마도 나처럼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었을까?
그 시절엔 내가 아이들의 우주였다.
작은 손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고, "엄마 어디 가?" 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 내가 부엌에 서 있으면 "뭐 해요?" 하고 달려와 안기던 아이들.
그런데 요즘은 눈을 흘기거나 대답을 퉁명스럽게 튕기는 일이 더 많아졌다.
말 한마디 꺼내면 한숨부터 나온다. 잔소리 조금 했다 싶으면 방문이 쾅 닫힌다. 그 소리가 집 안에 오래 울린다.
나는 그 닫힌 문 앞에 서서, 무엇을 잘못했나 생각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살 이야기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엄마는 살도 안 빼잖아!"
아이가 내뱉은 말이 가슴에 꽂힌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아이들 눈에 '엄마'가 아니라 '살찐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걸까.
말끝마다 튀어나오는 역공격. 내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이 말을 꺼냈다. 공부 이야기를 꺼내도, 핸드폰 이야기를 꺼내도, 심지어 방 좀 치우라는 말에도. 마치 주머니 속에 꼭 쥐고 있다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참나, 왜 여기서 살 이야기가 나와…."
입안으로만 중얼거리지만, 이미 대화의 본질은 흐려지고 있었다. 내가 뭘 말하려 했는지도, 아이가 왜 삐딱하게 구는지도 전부 묻혀버리고, 그냥 내 몸 하나만 덩그러니 방 안에 남는 느낌. 분하고 짜증스러웠다. 근데 또, 아이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도 안다.
살을 빼야 한다는 걸. 4년째 80kg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거울 앞에 서면 모르는 척 지나치지만, 모르는 게 아니다. 쇼핑몰 옷 사이즈가 안 맞아서 장바구니를 닫을 때도, 단체 사진 찍기 싫어서 슬쩍 뒤로 빠질 때도, 나는 다 알고 있다. 그냥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아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일은 많고, 책임은 쌓이고, 하루에 남는 시간이 너무나 없다. 아이들 깨우고, 밥 챙기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저녁 챙기고,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고. 그 사이에 나를 위한 시간이 어디 있나. 헬스장 끊어도 가는 날보다 못 가는 날이 더 많고, 샐러드 해 먹겠다고 결심해도 막상 퇴근하면 손이 가는 건 편의점 주먹밥이다.
'다이어트?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머릿속엔 이런 생각만 둥둥 떠다닌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의지를 꺼낼 기력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 먹여 살리겠다고 잠 줄여가며 일하다 보면 정작 내 몸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티는 게 전부가 된다. '지금 말고, 다음에.' 그 다음이 4년이 됐다.
뚱뚱한 건 숨기고 싶은데, 또 숨겨지지 않는 내 몸.
긴 카디건으로 가리고, 어두운 색 옷만 고르고, 사진 찍힐 것 같으면 카메라 반대 방향으로 몸을 튼다. 근데 웃긴 건, 그렇게 해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이미 다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외면하는 것도,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누구도 내 몸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나 스스로조차 똑바로 보지 못하는 마음이 뒤엉킨 채로, 그냥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또 아이가 한마디 했고, 나는 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근데 그날은 달랐다. 짜증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게 올라왔다. 목이 조여오는 것 같은, 눈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말로 나오기 직전에 가슴속에서 울음처럼 맺히는 말 하나.
"그만. 나도 빼고 싶다고… 제발 그만 좀 해."
소리 내서 말하지 못했다. 그냥 혼자 삼켰다. 아이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힘들다고 고백하는 순간, 엄마가 약해 보일 것 같아서. 근데 사실은, 약한 게 맞다. 매일 강한 척하면서 혼자 다 들고 가려는 그 사람이, 사실 제일 지쳐 있었다.
뚱뚱함 뒤에 숨겨둔 건 살이 아니었다.
아무한테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