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느라, 버티느라, 살아내느라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천장을 보며 잠깐 누워 있었다.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이불 속에 납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결국 일어났다. 늘 그랬듯이.
냉장고를 열고, 밥솥을 확인하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가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있어도 손만큼은 정확했다. 아침을 굶고 학교에 다니던 어린 날이 있었다. 배가 고파서 수업에 집중이 안 되던 기억, 점심시간만 기다리던 기억. 그래서인지 이것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내 아이들 밥상만큼은.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냈다.
집이 조용해지면 그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어폰을 꽂고 강의를 틀었다. 걸레를 밀면서 교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청소기를 돌리다 잠깐 멈춰 필기를 했다. 빨래를 돌려놓고 책상 앞에 앉아 원고를 쳤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문을 잠갔다.
퇴근 후엔 어질러진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우고, 씻기고, 재웠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 못 쓴 분량을 채워야 했다. 눈이 감길 때까지.
그게 어제였고, 오늘이었고,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었다.
가끔은 이 모든 게 벅차서 침대에 그냥 쓰러졌다. 그래도 회사는 갔다. 밥은 차렸다.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었으니까. 대신 다른 것들이 조금씩 무너졌다. 강의가 밀리고, 빨래가 쌓이고, 설거지통이 넘쳤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꼭 그런 날이면, 악몽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작년 봄이었다.
엄마아빠는 환갑이 넘어서도 서로를 무척이나 의지하고 사랑하신다. 그게 참 보기 좋으면서도, 각자의 틀에서 벗어나는 걸 여전히 어려워하신다는 것도 안다. 조금만 놓으면 편할 텐데, 그게 평생을 살아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엄마는 종종 남편에 대한 하소연을 이혼한 딸에게 전한다.
나도 맞춰주기 싫어서 이혼했는데, 엄마까지.
말은 턱까지 차오르지만 꾹 삼켰다. 엄마에게 의지할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서.
"그랬구나. 섭섭했겠다. 아빠가 왜 그러셔, 진짜."
아빠 험담을 한 바가지 받아주면, 엄마는 금세 말을 주웠다.
"근데 아빠는 잘해줘. 좋은 사람이야."
"알아. 엄마가 지쳐서 그러는 거잖아."
그즈음 큰딸의 사춘기는 절정이었고, 남동생은 엄마아빠가 물려준 땅을 혼자 받아가더니 그게 문제가 됐는지 집안이 시끄러워졌다. 받아갔으면 알아서 해결하면 될 것을.
챗바퀴는 집 안에서도 돌고 있었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는데 사방에서 창살이 날아왔다. 엄마 곰은 그냥 숲속에 누워서 꿀단지나 안고 퍼먹다 잠들고 싶었을 뿐인데. 그때쯤, 어렵사리 붙들고 있던 정신의 끈이 끊어졌던 것 같다.
당장은 몰랐다.
그러나 몸이 먼저 알았다.
몸무게는 어느새 93킬로에 이르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은 그대로였다. 잠을 자는 건지 그냥 쓰러지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이유 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면역은 바닥을 쳤다. 갑상선 수치는 엇나갔고, 자궁경부 세포는 불안정하게 날뛰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심박수가 160을 넘겼다.
입술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심장이 날뛰던 밤이 있었다. 그날은 진짜 무서웠다.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근데 다음 날에도 나는 또 일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멈출 수가 없어서.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슬픈 일도 없고 일도 잘 되고 있는데 눈가에서 갑자기 물줄기가 뚝 떨어졌다. 이상했다. 뭔가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멍하니 있다가도. 처음 겪는 증상이라 영문을 몰라 회사 후배한테 물었다.
"이상해. 눈물이 왜 자꾸 나지?"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혹시 요즘 많이 힘든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또 눈물이 났다. 기분은 시도 때도 없이 들쭉날쭉했다. 웃다가 가라앉고, 괜찮다 싶다가 또 무너졌다. 글도 쓰기 싫었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왔던 일인데, 그 숨이 막혀버린 것 같았다. 몸이 무너지는 걸 뻔히 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만 쌓였다.
처음엔 가까운 소아과를 찾아갔다.
"입술 감각이 없고, 눈물이 자꾸 나는데 왜 그럴까요?"
"립밤 바르세요."
"……립밤이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입술이 터서 간 게 아닌데.
며칠이 지나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자 자주 가는 한의원을 찾았다. 진맥을 짚던 한의사 선생님이 혀를 차더니 말했다.
"아이고, 어떻게 참았어. 몸이 이 지경까지 왔네. 내가 고쳐줄 테니까, 나만 믿어."
의사한테 들은 말인데 울컥했다. 누군가 내 몸을 보고 '이 지경'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얼마나 괜찮은 척해왔는지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나만 믿으라는 말 한 마디 붙잡고, 한약 한 달치를 빠짐없이 먹었다.
그리고서야 심장 박동이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
몸이 조금 버틸 수 있게 되자,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93킬로의 몸으로, 회사 점심시간에 달리기를 해보기로 했다.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는 그냥, 밥 먹고 앉아 있기가 싫었다. 빠르게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속도였겠지만, 그래도 뛰었다. 이어폰을 끼고 숨을 헐떡이며.
그때 우연히 한 영상이 재생됐다.
석가모니 명언 영상이었다.
나는 무교다. 근데 그날만큼은 어디든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흘려듣다가 한 문장에서 발이 멈췄다.
<결국 선택은 내가 했고, 힘듦도 내가 만들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계속 뛰어야 하는데 다리가 저절로 느려졌다.
맞다.
누가 억지로 먹으라고 떠민 것도 아니고, 이혼하라고 등을 민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도, 아이들도, 커져버린 이 몸도. 전부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도, 몸을 다시 만드는 것도 결국 내 몫일 수밖에 없었다.
억울할 줄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탁 하고 뚫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만들었다는 말이, 내가 바꿀 수도 있다는 말로 들렸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나 왜 울었지?"
그 순간 눈물이 신기하게 쏙 들어갔다. 헐떡이며 뛰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옆 사람이 봤으면 조금 무서웠을 수도 있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93킬로짜리 몸으로, 혼자 웃으면서 뛰는 엄마 곰.
그게 내가 다시 시작한 날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날부터 눈가가 점차 마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내가 한 선택이었으니까. 앞으로의 결정도 나일 테고, 내 삶만 책임지면 된다는 생각이 어쩌면 무척 가볍게 느껴졌다.
그 후로 석가모니 명언을 다시 찾아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그날 스쳐 들었던 몇 마디는 아직도 가끔 머릿속을 배회한다. 품느라, 버티느라, 살아내느라. 수고했다, 나.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