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왜 둥글어질까
나는 어느 날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딸 둘을 혼자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좋은 아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가정을 돌보는 일보다 글을 쓰는 시간이 더 좋았다. 쉬는 날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고,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신랑의 잔에 술을 따라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글을 쓰느라 밤을 새우던 중에 신랑이 "술 좀 사 와"라고 하면 그건 또 기어이 나가서 사 왔다. 추운 날도, 늦은 밤도 상관없이.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다. 정작 곁에 있어야 할 때는 없으면서, 심부름 하나로 내 역할을 다 한 척했던 것이다.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작은 행동 하나로 '나쁜 아내는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던 시절이었다.
(그가 내게 술을 사 오라고 했던 것은, 어쩌면 거래가 아니라 대화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그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그 짧은 부탁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가 여태 해왔던 행동들을 이유로 삼아, 나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채 그의 요청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것이 회피였다는 걸 이제야 안다.
우리는 둘 다 어렸다. 그도, 나도. 미숙했고, 서툴렀고, 상처를 주는 방식밖에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들을 끝내 용서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어린 날의 실수를 어른이 되어서도 놓아주지 못한 것이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 그 부탁이 어쩌면 화해의 언어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런 엄마곰을 가족들이 좋아했을까.

아니, 지금 생각해도 아니었을 것이다. 좋아하기보다는 그냥 익숙해진 것이었겠지. 늘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 기대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결국 우리는 갈라졌고, 아기곰 둘은 나와 함께 남았다.
그런데도 나는 욕심이 많았다. 아이를 키우고, 글도 쓰고, 부족한 글솜씨를 채우겠다며 사이버대학교까지 진학했다. 누가 보면 대단하다 했겠지만, 사실 그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냥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아서, 뭐라도 붙잡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문제는 내게 주어진 체력이 딱 하루치뿐이라는 거였다.

24시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전부 소진하고 나면, 밥을 차릴 기운이 없었다. 음식은 배달로 해결했고, 먹고 나서는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날이 반복됐다. 설거지는 내일로, 운동은 다음 주로, 내 몸은 순위에서 자꾸 밀렸다. 하루만 보도 채우지 못한 날들이 쌓여갔다. 그렇게 매일같이, 내 몸에 가장 치명적인 습관들을 조금씩 쌓아 올린 셈이다.
어느 순간 거울 속의 나는, 그냥 '나'가 아니었다.
딱, 곰 같았다.
둥글고, 묵직하고, 어딘가 느릿한. 그렇게 나는 뚱뚱한 엄마곰이 되었다. 발을 내려다보면 곰 발바닥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이 그 발을 보고 깔깔 웃었는데, 웃음 뒤에 살짝 민망함이 따라왔다. 근데 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몸의 사이즈를 키워갈 무렵, 나는 '1일 1 업로드'를 목표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억울하게 죽은 왕자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며 마주하게 되는 왕국의 사건들. 그리고 한 여자만 사랑하는 남자의 절절한 순정까지.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전부 쏟아부었다.
나의 소설에는 늘 가족의 愛가 중심에 있다. 정작 나는 내 아이들의 가정을 지키지 못했지만, 정서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을 품어주고 싶은 마음이 이야기를 쓸 때마다 자연스럽게 새어 나왔다. 내가 해주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 속에서만큼은 해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력은 아직 부족할지 몰라도, 그 작품을 완결했을 때만큼은 내가 쓴 이야기 중 가장 속이 시원하고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하나를 끝까지 해냈다는 것이, 그 시절 나에게는 생각보다 크게 필요한 감각이었다.
한참 뒤, 옛 작품을 다시 읽다가 남주가 여주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다.
눈물이 나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가슴 한쪽이 조용히 쿡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와… 진짜… 부럽다. 내 빚도 누가 좀 갚아 줬으면."
소설 속 이야기인데, 웃기게도 진심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