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도 건강한 빛의 삶을 따라
안녕하세요. 브런치북 《찬란하고도 건강한 빛의 삶을 따라》 독자님들.
이 글들은 이제 막 읽거나 이미 읽었던 책들을 소재로 필자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올리면서 글을 통해 공감도 주고받길 기대하고 있지만 너무 공감도 안 되는 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며 또는 너무 책 이야기만 하고 있지는 아닌가 하며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요.
독자님들께도 인사이트를 주고 싶었던지라 더 그런 것도 같아요.
쓰다가 너무 정리도 안된 글처럼 맥락도 없이 왔다 가는 거 같기도 하고 정제되지 않은 내용들과 소재들로 쓰는 글 같기도 합니다만 삶의 빛을 찾으려고 하는 모든 독자님들께 뮤즈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 글과 이야기는 좋지만 성장하기 위해 문체를 바꿔볼까 싶기도 하며 글에 대한 솜씨는 그대로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문체 말고도 많은 것을 바꿔야 하기도 하겠지만 글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해서 다른 작가님들을 참고로 쓰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더 노력해서 독자님들께도 좋은 글이 되길 바라고 있답니다.
오늘 글은 아직 미흡한 점으로 다음 글 발행 전 업데이트 해놓을 예정이니 목요일에 함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삶의 빛을 따라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는 와중에 이 주제를 쓰기로 한 이유로부터 삶의 대해 다양한 관점들을 보게 되는 중이다.
어릴 적 배웠던 것들을 지금 성인이 되어서 다시 시작했을 때 마음이 어떨까?라는 답을 찾기 위해 나선 이 가 또 있었다.
필자 스스로 고민하는 모습의 거울이라도 된 마냥 종이의 활자에 인쇄되어 한 글자씩 읽으며 '이 책은 어떻게 또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을까'하며 빛이라는 소재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가 되물어보게 된다랄까.
작가들이 이런 비슷한 경험을 담은 이야기들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서 책으로 읽게 된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를 생각하며 내가 이런 쪽으로 이끌리게 된 건 AI, 인터넷이 가능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하며 생각하게 된다.
추상적일 수도 있을 책 내용이지만 이미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나의 삶이 고민될 때 읽게 되어 몰입을 하며 보게 되어진다랄까.
예를 들어서 영화로부터 받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초점들이 이뤄지는 현상들을 표현해 냈는데 이것이 우리의 실제 상황에서도 일어난다는 삶의 비밀과 통찰을 이야기해 준다.
또 다른 예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영향력이다. 이들은 어느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들이다. 이런 일들을 먼저 겪어보고 지나왔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삶을 돌아보며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그건 또 신앙의 길이라고도 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의 글을 쓰신 분은 같은 종교는 아니지만 인생의 원리를 깨우치셨다.
필자와는 또 다른 것들이겠지만 인생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는 그 무언가는 창조였다. 필자는 인간이 창조를 한다기보단 신의 창조만이 창조인 것이지 인간의 손으로 탄생되는 것은 창조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창조된 것을 보며 내면에서 또는 외부 이론들을 규정하고, 탐구하고 공부하며 드러내어 재조합, 재구성을 통해 연구한 결과를 증명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경험하며 실패하는 것은 성공으로 가기 위한 일이며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창조를 하기 위해선 두려움이 같이 따른다며 그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시선을 바꿔주는 이야기들도 적혀있다.
필자는 '창조하다'라는 단어보단 창조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창조는 조물주만 하였고, 그 성품을 닮은 인간들은 창조성이라는 성질을 이용해 재조합과 재구성을 하여 독창적으로 증명하는 일뿐이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해서 창조라고 크게 뭉뚱그려 그냥 이야기하기도 했다.
창조성을 발휘해야 할 때 두려움이 필연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신을 넘어서야 한다는 속임수에 넘어갈 때 느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창조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셨고 내 안에서 무언갈 새롭게 창조성을 드러내야 할 때면 조심스럽게 이게 맞을까 하며 무의식적인 신에 대한 권위와 신을 이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증명이라고 필자는 이야기해 본다.
삶의 길을 찾는 것이 빛을 따라가는 것인데 그 빛은 기다리면 오기도 하지만 또 찾아가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아예 빛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의 빛에 대한 의지가 조금이라도 없을 때이겠다. 어둠의 영역에서 갇혀서 아무도 그를 찾을 수 없을 때 말고는 빛은 오기마련이다.
나에게 옆에서 다단계 같은 일들을 하려고 의미심장한 일로 다가오거나, 공동의 이익이라고는 하지만 먼저라는 시간과 물리적인 것들의 차이로 인한 보상의 차이로 이뤄진 일들은 이 세상에 순리이다. 그렇다고 똑같이 배분하자는 공산주의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이유 없이 선하게 다가오기만 한다는 것은 순진하고도 바보 같은 일이라며 없는 일로 생각해도 좋겠다.
행동 목적과 동기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인간은 몇 되지 않을 테다. 그런 사람들은 공동의 목표와 일을 추구하는 사람일 테다.
같이 함께 생존하는 것도 그 속은 똑같이 권력과 권위가 주어진다.
요즘 핫한 오징어 게임을 보면 다 같이 살자고도 이야기하지만 누군가는 희생이 되고, 사라지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두고 다른 사람이 해를 입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난다.
어떤 선택지도 뒤로 물러 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간절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목숨까지도 걸 수 있을까?
그러니깐 이 세상은 악과 양심이 부족한 탓의 사회가 또 만들어지는 것일 텐데 빛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에서 스스로의 내면에서 하는 추구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희생이 무조건 따르는 일이다.
다시 나갔다가 게임에 재입장해서 참여자를 살리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