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사돈 모리네 이야기 Part 2

by 차유진


모리는 아프다. 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던 봄날, 산책 중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귓불은 붉고 잇몸은 창백해지며 눈꺼풀이 떨렸다. 곧바로 품에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 한 달간 입원하며 여러 차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듣기에도 생소한 ‘에반스 증후군’이라고 했다.


<에반스 증후군은 몸이 스스로 혈액 속 중요한 세포를 공격해 파괴하는 병으로, 피가 부족하거나 쉽게 멍이 들고 감염에 취약해진다. 원인은 정확히 모르며 완치법도 없다. 주로 약으로 면역 반응을 억제하고, 필요하면 수혈이나 수술을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주로 노견에게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 생후 1년 6개월의 어린 모리에게 찾아왔다. 몸 안에 곰팡이균이 퍼져 외부 간염 위험 때문에 당분간 산책도 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 기쁨을 주던 모리의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이 시작됐다.


힘든 시간은 모리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보호자도 늘 곁을 지키며, 위급할 때마다 모리를 품에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복용할 약도 점점 늘어났고, 상태를 물으면 늘 간절한 기도 부탁드린다는 답만 돌아왔다.


"모리가 아파...!"


구찌도 혼자 산책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보호자에게 집중하며 걷느라 제법 의젓해졌지만, 가끔 모리가 달려오던 횡단보도 앞 사잇길에서 멈춰 바라봤다. "모리가 아파...!" 나지막이 들려주면, 금세 시무룩해져 고개를 떨구고 바닥에 붙어있던 앞발을 무겁게 뗐다.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릴 무렵, 비로소 만난 모리는 산책의 기쁨을 만끽할 기력도 없이 유모차에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를 보자, 아팠던 기억을 담은 울음 섞인 외마디 “멍!”으로 멀리서부터 서럽게 반겼다.


눈부시게 하얗고 풍성했던 털은 피부가 붉게 드러날 만큼 한 움큼 빠져, 맨홀 같은 흔적을 남겼다. 약 기운 탓에 네 발도 나른하게 움직였다. 만나기만 하면 좋아서 서로 핥고 부벼댔건만, 감염 위험 때문에 구찌도 멀리서 꼬리만 흔들었다.


모리가 아픈 걸 구찌도 알아챘는지, 몸을 돌려 주변을 경계했다. 평소 개나 사람에게 먼저 달려가던 모습과 달리 처음 보는 기사도였다. 주변 개들이 다가오면 우렁차게 짖어 멀리 쫓아냈다.



유모차 속도에 맞춰 걷는 동안 괜한 생각이 스쳤다.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 병원 검사를 받아야 하고, 병마와 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치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이미 최선을 다해 무리하고 있는 터였다. 상미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끝내 파양을 선택한다 해도,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나 모리 어머니의 고운 목소리가 내 오지랖 같은 생각을 멈추게 했다.


"그래도 이만하니 감사하죠...!"

"상미만으로도 이미 큰 시련인데, 왜 또 이런 고통을 주나 싶어 앞이 깜깜해요. 그래도 이미 가족이고, 함께 지낸 시간이 있으니 끝이 어디든 같이 가볼 수밖에요."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심도 대단했지만, 매번 감사할 이유를 찾는 것이 더 놀라웠다. 웃으며 말씀하시길, 상미 덕분에 오랜 습관처럼 작은 일에도 보람과 기쁨을 찾다 보니 감사할 순간들이 쌓였다고 하셨다.


모리도 처음엔 병원 갈 때 예민했지만, 이제는 아픈 자신을 돌봐주어 고마워한단다. 미소 뒤로 말끝에 맺힌 눈물을 살짝 훔쳐보았다.


여기, 귀한 사람

더위가 누그러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던 해 질 녘, 다시 만난 모리는 활짝 웃으며 힘껏 달려왔다. 반가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니, 혈소판 수치가 다소 정상으로 올라 스테로이드 약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 경과를 지켜보며 면역약은 계속 복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구찌는 모리에게 배를 보이며 땅바닥에 신나게 등을 부벼댔다. 모리는 아장아장 걸으며 산책을 즐겼고, 구찌는 걸음이 빨라지면 고개를 돌려 모리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발씩 보폭을 맞췄다.


헤어질 즈음, 상미의 언니가 어제 육교 위로 강아지 모양 구름이 피었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흰 구름은 푸른 잔디 위에서 신나게 뛰놀던 모리와 닮아 있었다.


멀어지는 모리네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지난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모리 어머니의 노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내일도 오늘처럼 충실히 살아가시겠지. 늘 그래왔듯이. 잠시일지라도 여기, 귀한 사람이 있음을 세상이 기억해 주었으면.



모리가 한창 건강할 때 모습

모리를 닮은 구름




2023.10. 27. 오마이뉴스 <배우 차유진 에세이> 게재
2025. 8.17. 글 개정. <브런치>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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