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지가 죽었어."
간만에 들른 동네 카페에서 접한 뜻밖의 비보였다. 꽁지는 몇 년 동안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살아온 길고양이다. 꼬리가 짧고 소시지처럼 뭉뚝해서 '꽁지'라 불렸다. 살랑살랑 흔들 꼬리는 갖지 못했어도 거친 영역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한 수컷이었다. 단지 내 새끼 고양이들 대부분의 아버지도 꽁지였다.
꽁지는 거의 뛰지 않았다. 늘 동네를 조용히 순찰하듯 걸었다. 걸음걸이에서 많은 새끼를 거느린 아비로서의 위엄이 물씬 풍겼다. 올봄, 샤샤(반려묘) 엄마가 꽁지를 제외한 암컷 고양이들과 새끼들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행했다. 더는 후사를 남길 수 없게 됐는데도 동네를 떠나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며 식솔들을 살폈다. 그야말로 진정한 사내였다.
꽁지가 로드킬을 당한 곳은 학교 앞 4차선 도로였다. 제한속도 30km, 아파트 단지 정문과 초·중·고가 사방에 있어 평소에도 서행 운전이 기본인 곳이다. 아침 등교 시간을 제외하면 도로는 늘 한산했다.
그 덕에 길고양이들도 어렵지 않게 길을 건넜다. 꽁지 역시 서두르지 않았다. 좌우만 살피면 무탈히 건널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매일 밥을 챙겨주는 샤샤 엄마와, “꽁지야~!” 하고 반갑게 불러주는 주민들이 있었으니, 사람을 믿었을 것이다.
누가 그랬을까. 어둠이 내리기도 전인 저녁, 살금살금 길을 건너던 고양이를 왜 보지 못했을까. 보았다면 잠시 멈춰 기다려줄 순 없었을까. 가해 차량은 꽁지를 치고도 제대로 된 사후 조치 없이 떠났다고 했다. 다행히 사고 직후 녀석을 알아본 주민과 샤샤 엄마가 달려와 사체를 고이 수습해 주었다.
사람이 범한 과실로 꽁지의 고단했던 풍찬노숙도 끝이 났다. 슬픈 소식을 나눈 카페 안의 착잡한 공기 역시 쉽게 걷히지 않았다. 이웃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씁쓸한 여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가을이가 꽁지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떡해...!"
가을이는 꽁지가 일편단심으로 애정했던 암컷고양이다. 원인 모를 사고로 늘 한쪽 다리를 절고 다녔다. 종일 풀밭에 숨어 있다가도 꽁지가 부르면 "엥ㅡ" 하고 모습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한가로이 산책길을 거닐며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 가을이의 중성화 수술로 교미는 불가능해도, 여전히 순수한 사랑을 이어가는 모습에 다들 신기해하며 흐뭇하게 지켜봐 왔었다.
어제와 오늘, 유독 구슬프게 들리는 길고양이 울음은 누구의 것일까. 꽁지의 새끼들일까, 아니면 가을이 일까. 꽁지의 부재를 알고 있는 걸까. 사람도 동물도 편히 잠들지 못할 밤이 깊어가고 있다.
꽁지야. 지금은 좀 편안해졌니.
우린 너희들보다 강하다고 자주 착각하며 살아. 우주의 먼지 한 점 만치도 못 되는 미물 주제에 말이지. 그런 오만함이 결국 너를 안타깝게 보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너에게 진심으로 미안해.
인간은 망각의 존재라서, 오늘이 지나고 나면 너의 일도 차츰 잊고 말 거야. 밥 주고 관심 가져주면 절대 고마움을 잊지 않는 너희들과는 다르지. 그럼에도 너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은 일말의 양심까진 지울 수 없었나 봐. 단 글 몇 자라도 너의 흔적을 어딘가에 남겨주고 싶었어.
험난한 묘생길이었지만,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제법 잘 살아냈잖아. 다행히 너의 지난날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여럿 되니 떠나는 길, 부디 외롭지 않기를 바래.
이제 무지개다리 건너 별이 된 꽁지야. 그곳에서는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놀아. 두 번 다시 길 위에서 태어나지 말고. 짧은 생이었지만 고생 많았다. 이제 편히 쉬어.
안녕, 꽁지야.
2024. 7.19. 오마이뉴스 <배우차유진에세이> 게재
2025.10.16. 글 개정. <브런치>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