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성적표 오른쪽 맨 아래, 행동발달사항란에 기입되어 있던 담임 선생님들의 소감은 대체로 '밝고 명랑함', '급우들과 잘 어울림', '학습에 세심한 주의를 요함' 등이었다. 그리고 늘 같았던 마지막 문장.
'맡은 바 책임감이 강함.'
신기하게도 1학년 때부터 시작된 책임감 레퍼토리는 학년과 담임이 바뀌어도, 마치 붙여넣기한 것처럼 동일하게 쓰여 있었다. 그럼 초등학교 6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교내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그런 일은 고사하고 반장도, 임원 직책도 맡지 못한 그야말로 평범한 아이였다. 그렇다면 왜 담임 선생님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맡은 바 책임감이 강함'이라고 적어 놓았을까.
추측해 보건대 한 반에만 60여 명, 때로는 오전·오후반까지 나뉠 정도로 넘쳐나던 아이들을 세세히 들여다보기란 역부족이었던 시절이었다. 업무에 떠밀려 그저 '책임감이 강하다'라는 듣기 좋은 문장으로 단순히 마무리했던 것을, 다음 학년 선생님들까지 커닝해 옮겨 적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 말이 마음에서 우러난 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듣기에 좋은 말 아니던가.
나를 키운 말, '책임감'
이유야 어쨌든 간에, 선생님들의 무책임하면서도 일관된 '책임감' 발언은 성장기 내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게 나의 유일한 장점인 줄 알고, 어디서든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맡은 일은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전의를 불태우다 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구석이 아닌 무대 중앙에 서게 되었다. 학예부 활동을 도맡고, 대학에서는 연극 연출까지 겸하며 장학금을 받아 졸업할 수 있었다.
사회에 나와 선택한 배우라는 직업은 또 다른 막중한 책임감을 요구했다. 주어진 대사를 숙지하여 현장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며, 인물이 처한 상황마다 관객에게 이해시키고 공감을 이끌어야 했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는 자책감에 밤새 뜬 눈으로 이불을 뒤척이곤 했다.
아버지가 파킨슨 판정을 받고 4년간 투병하신 끝에 급성 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병상을 지켰다. 장례를 치른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폐절제 수술을 받으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출연했던 영화 <항거>가 개봉되었는데, 수술 전날까지 홍보차 일정을 소화하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들어갔다.
친구가 그때를 회상하며 "힘들지 않았냐" 묻기도 했지만,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돌이켜봐도, 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버거웠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정말로 살아오면서 책임감을 지키겠다고 아등바등 애써본 적도 없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일이니, 그저 믿는 구석 삼아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행해 온 것이다.
현재 내가 지키고 있는 책임감은, 난생처음 입양한 반려견과 하루 두 번 이상의 산책을 하는 것이다. 유튜버들의 한결같은 당부에 따르면, 산책 두 번이 기본이란다. 강아지에게 산책은 생존과 직결된다고, 끝까지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지 거듭 물었다.
엄마가 구피 치어 50여 마리를 페트병에 담아 집에 오셨던 날부터, 팔자에 없는 물고기 집사가 된 지도 어느덧 10년째다. 매일 먹이 주기와 어항 청소도 성실히 챙기고 있다. 숨 쉬는 생명체 앞에서 책임감보다 앞설 것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환수하는 동안 찾아오는 물멍 타임은 또 다른 낙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 달에 한 편씩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있는 <배우 차유진 에세이>도 어느 순간 취미에서 책임감으로 옮겨져 버렸다. 간헐적이 아닌 주기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 독자분들이 생겼음을 인지한 순간부터는 낱말, 조사, 문장 하나하나까지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마감 날짜를 넘겨 지장을 주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며 거듭 다짐한다.
선한 파장을 일으키는 말들
이쯤 되면, '책임감'이 다소 부담스러운 덕목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란 그저 스스로 정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잘 지키는 것일 뿐이다. 인생의 절반을 넘기면서, 세상의 잣대와는 상관없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이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 계기는 분명,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롤링페이퍼 같은 책임감 발언 때문이었다. 설사 마음에 없는 빈 말이었다 할지라도, 좋은 말과 칭찬은 분명 상대방에게 적지 않은 선한 파장을 일으킨다. 어린아이에게는 삶의 중요한 구심점이 되기도 하고, 어른에게는 잠시 그 말을 붙잡고 믿고 싶을 정도로 위안이 된다.
다시 한번, 지난날 무심코 뱉었던 말들을 되짚어 본다. 진심을 다한 조언이랍시고, 되려 상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걱정 마. 잘될 거야. 응원해. 같은 마음을 충분히 담지 못했어도 습관처럼 던진 말들이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닌지.
2023.12.19. 오마이뉴스 <배우 차유진 에세이> 게재
2025. 9. 24. 글 개정. <브런치>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