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작년 초여름, 식초 냄새가 가느다란 실바람을 타고 아파트 7층까지 시큰하게 올라왔다. 오전 내내 경비원님이 화단 곳곳에 아낌없이 뿌린 덕분이었다.
풀냄새 맡기를 좋아하는 반려견들을 위해 농약 대신 식초를 쓰게 됐다고 했다. 코끝을 자극하는 배려의 향기를 맡으며,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언뜻 기억하기로, 경비원님이 근무를 시작한 건 재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다른 경비원 아버님들보다 연배가 한참 낮고, 덥수룩한 검은 머리 때문인지 단번에 눈에 띄었다. 가끔 삼삼오오 모인 이웃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오갔다.
"새로 오신 경비원님, 그만두시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다.
경비원님께 배운 세 가지
나는 그에게서 마음이 담긴 인사법을 배웠다. 집 앞에서 마주칠 때면 하던 일손을 멈추고, 두 손을 양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올린 채 몸을 숙여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공손히 인사하신다.
"잘 다녀오십시오."
그 인사는 서두름 없이 단정해서, 나도 모르게 거울처럼 답하게 된다.
"네,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의 인사는 평소에 얼마나 진심을 담고 있었던가. 인사 전에 발걸음을 멈춘 적은 있었던가. 두 손은 언제나 단정히 모아져 있었던가. 두 눈은 스쳐 지나가지 않고 상대를 오롯이 바라보고 있었던가.
마음을 담은 인사가 상대의 기분까지 정화시킨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짧은 말 한마디라도 빈 마음으로 전해선 안 된다는 것도, 그분을 통해 깨달았다.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 사이에 오가는 인사도 점점 경비원님을 닮아갔다. 서로 눈을 맞추고, 밝은 미소와 목소리로 마음을 전한다. 어쩌면 경비원님의 인사법이 불러온 선한 나비효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서 과묵하면서도 기품 있는 미소를 배웠다. 매주 월요일은 재활용 분리수거일이다. 오후가 되면 주민들이 일제히 나와 수거 자루 앞에서 플라스틱, 종이, 비닐 등을 분주히 분리 배출한다.
그때 낯선 중년 남자가 술이 반쯤 담긴 막걸리 병을 한 손에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병을 기울여 바닥에 쏟아버리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수거 자루가 흥건히 젖고, 쉰내가 사방으로 퍼졌다.
남자는 주변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사라졌다. 몰상식한 행동이라며 주민들이 대신 흉을 봐줬지만, 경비원님은 “제가 치우면 되죠.”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 웃어 보이셨다.
살면서 나는 그런 도량 깊은 미소를 몇 번이나 지어본 적이 있었던가. 내 일이 아니라며 미리 선을 긋고 지낸 날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호의가 자칫 호구로 비칠까 염려하며, 똑 부러진 태도만 켜켜이 쌓아온 건 아니었는지. 덤덤한 그의 성품 앞에서 괜스레 수선을 떨며 넓혔던 내 오지랖이 도리어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에게서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자세를 배웠다.
계절이 바뀌어도 정갈한 옷차림은 물론, 어떤 일에도 게으름을 찾아볼 수 없다. 보행로뿐 아니라 화단에 수북이 쌓인 낙엽까지 일일이 쓸어 담고, 무거운 쓰레기 수거함도 물청소해 햇빛에 말린다.
함께 지켜보신 엄마도 “저렇게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잘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은 늘 야무지고 정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주어진 소임에 귀천 없이 근면하게 임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존중을 넘어 존경심까지 불러일으킨다. ‘스스로의 일에 기본자세만 갖춰도 일터를 잃지 않겠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 준 진정한 귀인이다.
매일 배우는 어른의 모습
입김조차 얼어붙을 듯한 겨울 새벽, 잠시 경비초소를 나와 기지개를 켜며 잠을 쫓던 모습을 기억한다. 화단 곳곳에 사는 길고양이 얼굴도 일일이 사진으로 기록해 살피니, 녀석들 역시 그 마음을 알아 가끔 초소로 찾아와 기척을 남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선인은 알아보는 법이다.
경비원님의 휴무날, 우연히 동네 산책길에서 만나 반려견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2023년 11월 1일 첫 출근일을 정확히 기억하며, 낯설고 막막했던 그 순간을 들려주셨다.
"22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정년퇴임했어요. 경비원 일은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웠죠. 집에서도 말렸지만, 뭐든 움직이고 싶었어요.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네요."
그의 다사다난했던 시간이 충분히 짐작되었다. 무턱대고 업신여긴 이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불과 며칠 전, 무작정 시비를 거는 주민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습도 목격했었다.) 그럼에도 하다못해 요구르트 하나라도 건네지 않은 주민이 없었다며 먼저 감사함을 표현했다.
밤새 폭설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자 눈앞에 펼쳐진 설경에 잠시 마음이 빼앗겼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보행로는 이미 안전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보행기를 밀며 무사히 걷는 어르신들이 멀찍이 보였다. 아마 경비원님의 이마에도 구슬땀이 제법 맺히지 않았을까.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몸소 가르쳐 주셨기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되더라도 진심으로 쌓아가는 당신의 수고로운 하루들을 깊이 응원합니다.
존경합니다, 나의 경비원 아저씨.
나의 경비원 아저씨.
2023. 1. 20. 오마이뉴스 <배우 차유진 에세이> 게재
2025. 8. 12. 글 개정. <브런치>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