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도, 작은 기적이 머무는 카페

by 차유진


초등학교를 마주 보며 한적하게 자리 잡은 동네 카페가 있다. 카페와의 첫 인연은 1년 전 여름, 억수 같은 장대비를 피해 들어갔을 때였다. 소박하게 놓인 네 개의 테이블 중 창가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빗소리를 들었다.


사장 할머님은 그치지 않는 폭우 속에 커피가 식어갈 만큼 편히 머물게 해 주셨다. 생각해 보니, 카페가 들어서기 전에 있던 상점들은 연이어 문을 닫았고, 코로나로 주변 가게들마저 줄줄이 폐업했는데도 홀로 불을 밝힌 등대처럼 굳건했던 곳이라 늘 신기하게 여겨왔다.



할머님과 인사를 나눈 뒤로 가끔 이곳에 들러 머무는 일상이 생겼다. 처음엔 카페에서 목을 축이는 반려견들에게 시선이 갔지만, 차츰 담소를 나누는 이웃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단지 길고양이들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주고, 매일 사료와 물을 챙기는 샤샤(반려묘) 엄마는 콩알이의 눈에서 고름을 발견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조금만 늦었으면 뇌까지 전이돼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라 하자, 그녀는 주저 없이 한쪽 눈 적출 수술비를 내고 안도했다.



서로를 품는 이웃의 하루


미담을 전해 들은 카페 단골 이웃들이 십시일반 병원비를 모아 샤샤 엄마를 도왔다. 엄마와 나도 뒤따라 동참했다. 매일 아침 화단 구석구석에 사료를 나눠주고 오는 샤샤 엄마와 마주칠 때마다 남몰래 속삭인다.


“천사를 만났다!”


순순이(반려견) 엄마의 친정어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남매를 키웠다. 외국 출장이 잦은 딸 부부의 살림을 도우며 손주를 장성하게 키워낸 후, 노년이 되어 치매가 찾아왔다. 결국 집 근처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요일을 정해 친정어머니를 보러 간다. 불쑥 찾아가지 않기 위해서다. 당일에는 신선한 과일을 사 가서 간병인과 근무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가끔 회식비도 챙겨 드린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어머니의 목욕을 시켜 주시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바람대로 늘 정갈한 모습을 마주하며 감사한 마음을 새긴다.


지그시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자신이 딸이라 나지막이 말해 본다.


“아니야, 우리 딸은 예쁜데.”
“그럼 난 누구야?”
“좋은 사람.”


어머니는 그렇게 답하며 딸의 머리를 곱게 쓰다듬어 주신다. 순순이 엄마를 통해 말보다 고운 선행을 배운다.


소망이(반려견)가 할아버지와 함께 카페를 찾을 때면 유독 반기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새끼 때부터 동네 편의점 앞 짧은 줄에 묶여 수년간 사계절을 묵묵히 견뎌 온 녀석이다.


폭염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할아버지네 가족은 편의점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행스럽게도 소망이를 집으로 데려가 에어컨 바람 아래 더위를 피하게 해 주었고, 결국 가족으로 맞아들였다. 잔병치례도 사라져 이제는 어디든 산책을 다닌다. 소망이의 흰 털은 윤기까지 흐른다.


짓궂은 행동 없이 사장 할머님을 의젓하게 바라보는 녀석의 눈은 사람보다 깊고 단단하다. 소망이의 견생역전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함께 닮아가는 동네 사랑방


카페에 저절로 발걸음이 향하는 이유는 뭘까. 그 중심에는 동네 반려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장 할머님이 있다. 반려견들은 서로 앞다투어 할머님의 볼을 핥으며 눈을 맞추려고 줄을 선다. 산책을 마친 반려견이 카페로 전력질주하면, 할머님은 가게 문을 활짝 열고 나와 반겨주신다. 녀석 또한 꼬리로 답례한다.



휴무인 일요일에도 가게 앞을 서성이며 할머님의 부재를 확인한 뒤에야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다. 할머님과 인사를 나눈 반려견 대부분이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카페를 그냥 지나쳐도 멀리서 손을 크게 흔들어 주신다. 한겨울 반려견과 산책 후 얼어버린 두 손도 꼭 잡아 녹여 주신다. 이웃 주민들에게는 친구 집에 차 마시러 가듯 편안하게 곁을 내주신다.



때로는 치매가 올까 걱정하지만, 할머님을 좋아하는 수십 마리 개 이름을 일일이 외우는 모습만 봐도 그런 염려는 접으라며 모두가 근심을 덜어드린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포근히 품어 주시는 사장 할머님의 입가엔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화기애애한 엄마들의 대화 사이로 복순이네 아들이 살며시 들어온다. 음료를 주문한 뒤 책가방을 내려놓고 영어 참고서를 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오더니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장 오래된 단골이라고 한다.



사장 할머님은 6년간 떡과 빵을 주며 보살폈다. 어느 저녁엔 점퍼 속에 붕어빵을 품어 와 수줍게 꺼내 보이기도 했다. 또래 친구도 없는 카페에 자주 오는 이유를 조심스레 물었다.


“편해서요.”



라고 씩 웃으며 답했다. 더는 묻지 않았다. 느끼는 건 같으니까.


공간이 다소 협소해 지인과 긴밀한 사담을 나누기 어렵다. 이곳은 통상적인 카페처럼 약속해 만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안 보이면 근황을 궁금해하고, 모습을 보이면 크게 반색하는 곳이다.


어제는 순순히 엄마가, 오늘은 사장 할머님이 내 앞에 스스럼없이 동석하기도 한다. 빈손으로 오는 일도 드물다. 무 하나라도 깨끗이 씻어 와 할머님께 드시라며 툭 내민다. 서로 사는 형편에 대한 편견 없이 음식을 나누며 인생을 공유하는 이곳은 반려견과 동네 이웃들의 사랑방이다.


복잡한 삶 속에서 잠시 마음의 정화를 얻고, 소소한 선행을 닮아가며 점점 이웃으로 물들어가는 곳. 36.5°C 체온이 오롯이 느껴지고, 커피 향보다 사람 냄새가 진한 카페. 나는 요즘 ‘동네 카페의 참맛’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다.




삶의 온기가 흐르는 우리 동네 카페




2024. 4. 22. 오마이뉴스 <배우 차유진 에세이> 게재
2025. 8. 13. 글 개정. <브런치>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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