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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Oct 02. 2015

논어 공부(7) : 옹야(雍也) 편(1)

옹(雍)의 성은 '염(冉)'이며, 자는 중궁으로 공자의 제자입니다

#1 공자가 중궁에 대해 말하였다.

"얼룩소 새끼라도 색깔이 붉고

뿔이 반듯하면, 쓰이지 않으려고 

해도 산천이 가만 놔두겠는가?"


(논어집주 해석) 중궁의  아버지는

천하고 행동이 나빴으므로, 공자가

그렇게 비유하였다. 아버지의 악이 

그 아들의 선을 폐기할 수 없다.

중궁처럼 현명하면 자연히 세상에 

쓰일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을 볼 때 가장 피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면 그 사람에 

집중해야지 그 사람에 대해서 집중하면 

그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고, 올바른 활용이 불가능

합니다.


#2 바탕이 형식을 압도하면 거칠고, 

형식이 바탕을 압도하면 겉만 번드르르하다.

형식과 바탕이 어울려야 군자다.


형식이 더 중요한가요, 바탕이 더 중요한가요?

편집이 더 중요한가요, 컨텐츠를 잘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가요?

사실 이 질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질문입니다.

양질의 컨텐츠를 올바르고 적절한, 어울리는 형식에

담아내는 것 까지가 실력입니다.

사람들은 감각기관으로 느끼지 마음만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형식미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눈이 즐거운 것만으로 궁극적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내용이 머리에 자극을 줘야 궁극적으로

만족합니다.

이래저래 참 살기 피곤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자님이 살던 시대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3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


일을 할 때 우선 그에 대해 잘 알고 좋아하며

즐거워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좋아하고 즐거워 하기에

현실 세계의 스트레스는 너무 심하고

그러다 보니 아는 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열심히 하는데 까지는 해봐야죠.


#4 중용의 덕은 지극하다. 사람이 이 덕을

결핍한 지 오래되었다.

(집주) 치우치지 않음이 '중', 변경되지 

않음이 '용'이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정해진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평탄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은 나에게 너는 어느 편이나 물으며

같은 편인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무조건 변해야만 산다고 모든 부분에서

변화하라고 요구합니다.


유연하게 살기는 하나 중심을 잃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데,

쉽지 않음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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