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고전', '나를 위한 고전 읽기'가 필요합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우리 말 속담 '제 논에 물대기'의 한자 표현이기도 하지요.
사실 이 '아전인수'는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을 잘, 꾸준히 읽으려면 이런 어쩌면 이기적이기 까지 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에게 도움이 안 되면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다 고전이라고 인정해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 말이지요. 고전을 읽는 이유,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출발점은, '나'를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일본 조치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인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 생활의 발견'은 제 인생의 책 중의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이 무엇인가, 어떤 책이 나에게 고전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쇼이치 선생은 고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처음의 정의는 사실 이전 글에서 인용한 이지성 작가나 다치바나 다카시의 정리에 비교하면 정말 단순하고 애매 모호해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분의 정의는 굉장히 탁월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후대에 남은 책'이 아니라 '후대에 남게 될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이것은 시간적인 부분에서 엄청난 차이입니다.현 시대의 책들도 고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즉 '현재'의 저작들도 고려한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나의 마음을 시원케 한 정의는 고전이란 '내'가 반복해서 읽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고전은 누가 정의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이 문장을 읽으며 말 그대로 머리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여기서 결론을 내야겠군요. 고전이란 내가 두 번 이상 읽는 책입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책읽기의 과정은 나만의 고전 리스트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논어'가 어떤 이들에게는 고전, 즉 두 번 이상 읽을만한 값어치가 있는 책일 수 있으나 어떤 이들에게는 수면제일 수 있습니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만화에 불과할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평생 함께 할, 말 그대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그런 책입니다.
고전 추천 리스트의 유용성은 고전이 될만한 후보를 추천해주는 것이지 그 리스트 안의 모든 책들이 다 나에게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