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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다

보다 - 김영하

by 생각창고

우선 이 '보다' - '읽다' - '말하다' 시리즈는 마케팅을 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간결하면서 직관적인 제목, 너무 단순하고 뻔한 제목이지만 이 사람이 도대체 뭘 보고, 읽고, 말했을까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소구'하기 때문입니다. '예리하고도 유머러스한 통찰'이라는 광고 카피가 무색하지 않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는 일찍이 공감했습니다만 이번에 '보다'를 읽으확실해졌습니다.


우리나라 현대 작가들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한강의 '채식주의자',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으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오더군요. 김영하 작가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작가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입니다만 개인의 취향이 그러니 어쩔 수 없고, 어느 정도 내공과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작가들의 산문집은 정말 좋습니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 그랬고 김영하 작가의 이 시리즈들도 그렇고. 김훈의 산문집은 뭐 두말할 나위도 없고요. 글솜씨와 '사고력' 및 통찰력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문장의 힘이라는 것을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느낍니다만 문학을 하는 이들이 인지하고 이해한 세상을 써 내려간 문장들을 볼 때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학적인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키운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강력한 자기계발의 과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만,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보다'라는 책이 그만큼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지 좋은 예가 되는 책인 것 같습니다. 통찰력 담긴, 세상을 바라보는 지극히 객관적이면서도 지극히 주관적인, 상호 모순되는 느낌을 주기는 하나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런 문장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다.

이 부분에서 드라마 '시크릿'의 현빈의 대사를 인용하기도 합니다. 제가 김영하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영화, 드라마 등 다른 매체들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보이고 이를 기반으로 인사이트 있는 해석을 날려 주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됐건 영화가 됐건 어차피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스토리텔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차피 동일선상에 있으니 잘 읽어 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참, 출판사에 김영하 작가의 영화평 및 서평집 출간을 건의해볼 생각입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귀하다. 사방에서 볼 것이 쏟아진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맹렬히 내 시간을 노리는 것들 투성이다.

100% 동감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나의 시간을 노리고 그것뿐 만 아니라 내 지갑을 노리는 것들 투성이인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도대체 언제 '나'인 것 일까요? 나는 나로 사는 것일까요 나를 연기하면서 사는 것일까요?


"대디, 난 너무 무서워요. 영화 밖 실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면은 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걸까요? (...)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마를린 먼로의 고백입니다. 영화배우들, 특히 잘 나가는 배우들이 알코올, 약물 등 준 현실 도피를 위한 수단에 왜 그렇게 몰두해서 스스로를 극단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나머지 인상 깊은 문장들입니다.


지금의 대중은 윤리적 생존 대신 생존의 윤리를 가르쳐줄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다.


남의 위험은 더 커 보인다. 반면 자기가 처한 위험은 무시한다. 그게 인간이다.


세상에 자신을 바꿀 것이냐, 세상을 자기에게 맞게 바꿀 것이냐. 아마도 모든 예술가의 고민일 것이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입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이 들지요.


현대의 가족들은 전선이 분명하게 그어진 정규전이 아니라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시가전을 치르고 있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있다.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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