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창고 Sep 07. 2016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 배경화면 : Maurits Cornelis Escher, "Relativity"


#1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기획업무를 하다 보니 보고서를 쓸 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분석'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보고서 경력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분석'을 나름 정의해본다면 '인과관계 찾기 또는 규명하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원인을 규명하여 결과(이미 벌어진 일)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그에 따른 대응 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업무를 계속하다 보니 모든 일에 인과관계를 따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사실 대학원 때 전공인 통계학의 영향도 큽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 인과관계의 규명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아냥 거림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다 보니 피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만큼 어렵고 한계에 봉착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2 어느 인과론자의 고백

개인적인 성향을 굳이 밝힌다면 저는 인과론자에 속합니다. 모든 결과에는, 사건과 현상에는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 쪽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원인을 모르고 못 찾을 뿐이지 원인이 없는 결과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삽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이 조금 피곤해지기도 하더군요.(그냥 에이 모르겠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계속 그 원인이 뭘까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명암'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띠지에 다음과 같은 책 속의 문장이 한 구절 적혀 있더군요 :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이네."


인과론자인 제가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원인을 모르는 것이지,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듯이 원인 없이 결과가 나올 수는 없는 법입니다.


물론,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고 또 이것들이 얽히고설켜서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것이 이 현상의 원인(들)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말 그대로 우연으로 돌리거나 운이 좋거나 나쁜 경우로 돌리기 쉽지요. 힘들게 이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데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생산적일 테니 말입니다.


오늘 야구 중계를 보는데 한 선수가 친 볼이 보통 같으면 평범한 유격수 땅볼로 처리되었을 타구인데, 이게 2루 베이스에 맞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굴절되면서 1타점 2루타가 되더군요. 물론, 이 현상/결과를 설명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타자의 타격 폼 및 배트의 움직임, 배트에 맞은 부분, 공의 구질 및 속도, 타격 당시의 공기 중 습도 및 공기의 움직임 등 확인 가능한 모든 변수들을 고려해서 베이스에 맞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겠지요. (오죽하면 '야구의 물리학'이라는 책도 있겠습니까!!!) 이 경우도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을 뿐이고 그 팀과 타자가 운이 좋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깔끔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 가장 좋은 인과관계 학습법인 역사공부, 그러나...

이런 인과론자로서의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역사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안다고 해서 인생이 더 행복해지거나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은 없습니다만 최소한 인생이 답답하거나 무기력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인드로 꽤 오랜 기간, 상당히 많은 역사책을 읽으며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뿌듯함을 즐겼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죠.


우리가 아무리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과거로부터 많이 배우는 목적은 현재를 잘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즉, 과거의 인과관계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서 현재 및 미래에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과거의 인과관계를 잘 알고 체득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미래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인간들의 '삽질'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 공부를 그만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것마저도 아니라면 인생이 너무 무기력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사는데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그리고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지 정도에 대해서는 궁금해하고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인생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책임지는 자세가 아닐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