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창고 Aug 12. 2015

귀신 그리기 vs. 보고서 쓰기

한비자에서 얻은 보고서 쓰기에 대한 교훈

매거진에 공자에 대해서 연재를 하는 중입니다만

사실 관련해서 가장 글을 쓰고 싶은 고전 및 사상가는 '한비자'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고전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현대 조직 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이  '한비자'는 한번쯤은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한비자에서 배운 기획서를 비롯한 보고서 작성의 어려운 점을 한 번 나눠 보고자 합니다.


제왕(薺王)을 위하여 그림을 그리겠다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제왕이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그림이 가장 그리기가 어려운가?"

"개나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그리기가 쉬운 그림은 무엇인가?"

"귀신입니다."

대체로 개나 말은 누구나가 조석으로 눈앞에 보고 있는 짐승이므로 반드시 똑같이 그려야 하지만, 귀신은 형태가 없어 아무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되는 대로 그려도 되므로 쉽다고 한  것입니다.

                           - 한비자, 외저설 좌상 中에서 -


'보고서 쓰기는 귀신 그리기이다'라고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위의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쉽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반대로 굉장히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즉, 윗 분들의 머리 속에 '어떤 귀신'이 들어 있는 지를 알고 그 형상에 맞게 보고서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남들 다보는 개나 말만 그려서 가져가면 백전백패로 깨지게 되어 있고(이걸 누가 몰라, 성의가 너무 없는 것 아냐?라는 핀잔 듣기 십상이죠) 그분들의 머리 속에 있는 귀신과 다른 형태의 '귀신'을 그려 가면 이 또한 100% 패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이 귀신의 형태 파악이 보고서 성공의 열쇠입니다. 담겨 있는 정보의 양 및 가치도 중요하고 표현력도 중요합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상사들이 그리고 있는 귀신과 얼마나 닮아 있느냐 입니다.

(사실 , 보고서 쓰는 스킬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배우고 습득할 수 있습니다만 이 귀신 알아 맞추는 스킬은 정말 득템 하기가 어렵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 윗 분들이 본인들도 잘 모르는 귀신의 형상을 이게 당신이 그리고 싶어 하는 귀신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수준까지 가야 하는 것이죠.



이것을 단순히 윗 사람 비위를 맞추는 보고서 작성이 아니냐고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이 귀신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는 결국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능하다는 이야기이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이야기는 상사가 본인의 상사에게 설명 및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을 넘어서는 궁극적으로는 소통의 문제입니다.



전 직장에서 모셨던 팀장님 중 한 분은 제가 보고서를 들고 가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원들이 뭐를 궁금해할 것 같으냐? 그리고 나는 뭐를 궁금해할 것 같으냐?"


이 말이 나오면 제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였고 결국 팀장님의 지도(?) 아래 전면 수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팀장님, 그리고 담당 임원의 머리 속 귀신을 끝내 그려내지 못하고 지내왔던 지난 수년간의 직장 생활이 머리 속을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네요.


앞으로 조금씩 나아지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