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믿고 싶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고 우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감상한 후에 선택할 길은 둘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현실에 무관심해져서 더 암울한 현실을 만드는 데 일조하던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할 안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던지.
여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장필우(이경영) 의원이 있습니다. 그의 뒤에는 그의 경제적 스폰서인 미래 자동차 오 회장(김홍파)이 있습니다. 이 둘이 우연히 연을 닿았을 리 없지요, 유력 일간지 주간인 이강희가 처음부터, 앞에서 때로는 뒤에서 모든 것에 관여하고 각각의 관계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강희의 수족으로, 해결사이자 채홍사 노릇을 하는 건달/사업가인 영화광 안상구(이병헌)가 있습니다. 그는 이강희를 신뢰했으나 그의 배신으로 한 손이 잘리고 영화 속 표현처럼 바보처럼 상당 기간 살게 됩니다. 한편, 反 장필우 라인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검찰청 부장검사는 장필우를 낙마시키기 위해 족보도 없이 출세하기를 애쓰는 경찰 출신 검사 우장훈(조승우)을 칼잡이로 이용, 그를 몰아붙이지만 실패하고 그로 인해 우검사도 같이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우장훈과 안상구는 손을 잡게 되고 그 후 밀고 당기면서, 위기에 빠졌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던 끝에 마침내 그들이 원하던 화끈한 복수극을 완성하게 됩니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평을 쓰기 위해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비평가가 본인의 스탠스를 확실히 정한 후에 어떤 관점으로 그 작품을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출발점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인물 중심으로 요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을 장필우, 즉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정치인으로 삼았고 그다음 인물로 대기업 회장인 오 회장을 선택했습니다. (영화에서 차지하는 캐릭터의 비중과는 별개입니다) 네, 제가 이 작품의 처음이자 끝으로 보는 것은 '권력'과 '돈'과의 그 시종과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관계입니다.
언론은 어떤가요? 이 작품에서 이강희로 대표되는 언론은 권력과 돈을 뒤에서 조종하는, 때로는 이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존재입니다. 프로파간다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누구보다도 애쓰지만 그들이 궁극으로 원하는 것 또한 돈과 권력입니다. 옳고 그름과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역할을 한다고 '공식적으로' 늘 주장하지만 본능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습니다. 둘 사이의 윤활유요 매개체 역할을 120% 탁월하게 해냅니다. 괴벨스가 히틀러 정권에 절대 충성하며 프로파간다를 했다면, 이강희 및 메이저 언론은 하나 덧붙여 자본과 정치권력에 절대 충성하며 그들의 이익을 챙깁니다.
검찰 그리고 조폭, 이 작품에서 이 두 집단은 철저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유지되나 이해관계가 얽히면 서로를 죽일 듯이 물고 뜯고 끊임없이 싸우고 견제하는, 어찌 보면 동질적인 집단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꽤나 그럴듯하고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추측입니다만 두 집단이 너무 비슷해서 감독은 검사와 조폭이 힘을 합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광화문을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광화문에는 우리나라 유수의 신문사들의 사옥이 있고 그들이 뉴스를 내보내는 대형 전광판이 있습니다.(영화 초반부에 멀리서 그 전광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강희의 사무실에서는 광화문이 훤히 내려다 보이지요) 그리고 정부 종합청사가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청와대가 있지요. 대통령 후보와 언론인은 이 '광화문'을 접수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잡기 위해 시종일관 연합하고 서로를 이용하면서 함께 갑니다. 권력 획득 및 유지를 위한 비즈니스를 정치권력과 언론이 충실히 시행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잡는데도, 그리고 유지하는데도 돈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심장을 강남으로 본다면(뭐, 여의도 금융가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 강남의 소유주인 미래 자동차 오 회장은 정치/언론 권력에게 이 돈이라는 산소를 끊임없이 공급합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이미 소유한 '강남'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싶고 가능한 한 더 크게 키우고 더 많이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권력을 사는 것이지요. 중국 전국시대 때, 여불위가 볼모로 잡혀 있던 진나라 공자였던 자영에게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듯이(자영의 아들이 그 유명한 진시황입니다) 이 시대의 여불위(사업가)들은 끊임없이 왕(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고 그들에게 줄을 대고 투자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비즈니스를 지켜주고 또 키워줄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는 모든 것이 '비즈니스'라는 것입니다. 정치도 기업들과 비즈니스를 잘하지 못하면 그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습니다. 언론은 더 직접적이지요. 명시적으로는 광고주인 기업들과 비즈니스를 잘해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본인들에게 우호적인 정치권력이 지속되어야 그들의 말발과 글발이 먹힐 테니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그들을 대하고 선별해서 투자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관점도 영화를 보다 보면 검찰과 조폭은 사실 그 입지와 영향력이 정말 보잘것없습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정치/언론권력과 기업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검사와 깡패의 몸부림이 영화 보는 내내 애처롭게 보였다면 너무 심한 가요? 정치권 및 언론과 비즈니스를 할 급이 안 되는, 그냥, 우검사처럼 맨땅에 헤딩하듯이 들이댈 수밖에 없는 그런 두 집단입니다. 양지와 음지에서 정말 막강한 힘을 가지고 그것을 휘두르며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크게 보면 바람따라 흔들리는 파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만 이 작품은 상당한 수준의 영화입니다. 장점이 정말 많습니다만 몇 가지만 짚어 보겠습니다.
우선 훌륭하지만 미완인 원작. 너무나도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동명 만화가 원작입니다. 한겨레 신문에 2010년부터 2012년까지 73회 정도 연재되다가 미완인 상태로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이 만화를 꾸준히 보면서 말 그대로 만화로 그냥 흥미롭게 읽었고 마무리되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만화도 영화만큼이나 그림톤이나 대사들, 상황들 하나하나 윤 작가님 만화답게 담담하면서 우울하고 무서웠습니다. 현실을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담담하게 묘사하는데 그래서 더 실감 나고 무섭습니다.
다음은 배우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차갑고 우울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시킨 일등공신은 백윤식 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한 그의 대사와 표정 및 연기는 자칫 분노와 광기로 폭주'만' 열심히 할 여지가 많은 이 작품에 균형 감각을 선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감정과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계와 같은 싸늘함과 냉정함, 더 나아가 무서움이 느껴집니다. 이병헌과 조승우 등 다른 배우들의 화려함이 백윤식의 담담함과 냉정함 때문에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노련함과 차분함이 영화 전체를 안정적으로 끌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헌과 조승우는 두말할 나위가 없는 배우들입니다. 둘이 불을 튀기면서 연기 합을 맞추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에너지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캐릭터 자체도 워낙 흥미롭고 화려하지만 누구나 이런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들이 가진 배우로서의 역량이 빛을 발했습니다.
조연이지만 오 회장 역의 김홍파 님의 연기도 비중은 크지 않으나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탐욕으로 가득한 음흉한 눈빛에 기반한 표정연기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우민호 감독은 완전히 다시 봤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간첩'을 봤는데요, 정말 크게 실망했던 영화였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완전히 홈런입니다. 그것도 9회 말 투아웃, 역전 만루홈런. 그만큼 임팩트가 강합니다. 각본도 대단하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되 완급 조절 또한 잘하는, 연출력도 좋습니다. 다음 영화도 한 번 기대해보렵니다.
영화 속 한마디
-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 대한민국 메이저 언론이 국민들을 대하는 자세
- "권력욕, 성욕, 물욕이 있어야 젊게 산다." : 정치인 등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젊게 살 수 있는 이유
- "공을 보고 쳐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 "차분해야 한다." : 골프를 치는 이유-인생의 교훈이 있어서
- "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계속 전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