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평 쓰는 법 - 이원석
첫 서평이 서평 관련 책이라니, 즐겁습니다!!!
* 얇은데 넓고 깊은 책입니다. 서평 쓰기의 교과서요 매뉴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서평을 체계적으로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1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관련해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쓴 영화와 책에 대한 글이 스스로 봐도 허전하고 흡입력이랄까, 결정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상당 기간 글을 쓰는데 슬럼프가 왔습니다(이전 몇 달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원인을 모르니 답답하기도 하고 글도 안 써지고 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펜과 자판을 멀리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서 눈을 다시 뜨게 됐습니다.
서평과 영화평은 읽는 이로 하여금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쓰는 글이라는 것을, 참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독자'를 향해서 쓰는 글인데 지금까지 저의 글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더군요, 5천 명이 넘는 저의 브런치 독자분들께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책과 영화에 관한 글들이 전부 감상문이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감상도 중요합니다만 저만의 새로운 해석을 기대하면서 읽은 분들이 많으셨을 텐데, 이 부분이 치명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감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이 그 책을 읽거나(영화를 보거나) 또는 읽지 않게 되기를(보지 않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감상문을 써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서평과 영화평을 남겼어야 합니다.
이 책은 서평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어야 하는 것들은 물론, 서평의 목적과 더 나아가 책과 독서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정중하면서도 신랄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짚어주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어서 3번을 읽었습니다.
#2
독서가들은, 책을 통해, 독서를 통해 '인생살이에서 길을 찾을 안목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는데 필요한 지혜가 어찌 책에만 있겠습니까만, 이들은 책 읽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책을 좋아한다면 '말과 글을 통해서 읽은 것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독서를 완성'해야 하는데, 서평 작성은 그 정점에 있는 행동입니다. 무엇보다 '책은 나만의 해석을 거쳐야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서평은 반드시 써야 합니다. 독서라는 행위가 저자와의 대화라고 한다면, 대화의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정점이 역시 서평입니다.
사실, 읽은 모든 책에 대해서 서평을 공들여 쓰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조금 부지런해서 '감상'정도라도 빠짐없이 남길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요. 이런 현실에서 서평을 '제대로'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서평을 쓸만한 책을 고르는 안목도 중요할 것입니다. 서평을 쓴다는 것은, 달리 이야기하면 나만의 고전 리스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와타나베 쇼이치가 '지적 생활의 발견'에서 밝혔듯이 고전이라는 것은 '내가 자주 읽는 책, 살면서 그때그때 생각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게 되는 책'입니다. 내가 두 번 이상 읽은 책, 또는 평생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에 대해서 서평을 남기겠다고 접근을 하면 책을 고르는 기준을 잡기도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3
저자는 서평 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서평을 쓰는 목적을 책 내용의 1/3 정도를 할애해서 이야기합니다. 짐작컨대 서평 쓰기의 목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서평의 목적은 그 서평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서평가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즉, 내가 작성한 서평을 통해 그 책을 읽거나 또는 읽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평은 대상 독자가 있고 그 독자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서평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요약과 비평입니다. 먼저, 내가 읽은 책을 요약하는 것에서 서평은 출발합니다. 내가 읽은 책을 요약, 정리하지 못하면서 서평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요약을 잘 했다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의미입니다. 요약만 잘해도 그것을 읽은 사람들에게 해당 책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는 크게 부족함은 없을 것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독서가요 서평가인 다찌바나 다카시가 이 요약 서평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목차를 수시로 보고, 이를 기반으로 요약하고 메모하고, 나름의 의견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저자는 충고합니다.
이런 잘 작성한 요약이라는 단단한 백그라운드 위에 비평이라는 요소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추가해야 그 서평은 완성됩니다. 이 요약과 비평을 잘하기 위해서, 먼저 '책 자체에 대한 기본 입장을 정하고', '서평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서평은 개인적 판단의 공적 표현이므로 개인의 기호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만의 해석학이 없다면,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서평은 언감생심이겠지요.
#4
서평 쓰기 가장 어려운 책이 이른바 '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제목쯤은 알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읽었기 때문에,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그럴듯한 평을 수도 없이 해놓았기 때문에 섣불리 '평'을 할 마음먹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대단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내'가 평을 한다는 것이 가당찮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고전이 이름값을 하는 것은 해석의 가능성이 소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나름의 해석과 비평을 가하는 것은 고전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일이며 더 나아가 다른 이에게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전에 대한 나의 해석과 비평은 가치가 있습니다.
본문에 인용된 이현우(로쟈) 서평가의 말을 빌면, 고전이라는 것은 '무수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는 가운데 그것을 버텨내는 텍스트, 그러니까 읽고 나도 계속 뭔가 읽을거리가 남는 텍스트가 바로 무한한 텍스트이고 텍스트-무한'이기 때문에 나 나름의 해석 및 비평은 그 무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으로써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애서가요, 독서가라면, 고전에 대한 비평과 나만의 견고한 해석학 체계를 갖추는 것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고전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부딪쳐서 나만의 무언가를 얻어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