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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May 28. 2016

해질 무렵 - 황석영

#1 칼날의 방향과 대상이 바뀌다

황석영 작가님은 잘들 아시다시피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과오를 향해 비수를 들이미는 작품을 많이 쓰셨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손님'인데 아마도 이 책과 그다음에 읽은 '강남몽'이 비수가 가장 날카롭게 서 있었던 작품들이 아닌가 합니다.(물론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손님이 그 정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면, 강남몽은 시대를 향해 소리를 지르기 위해 쓴 일종의 격문 같아서,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봤을 때 완성도 및 만족감은 상대적으로 좀 덜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 비수가 날아가는 대상과 방향이 조금 바뀌었고 또 비수를 날리는 목적이 저격과 샅샅이 파헤침이 아니라 치유가 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건축 및 건설 사업에 얽힌 복마전 같은 부패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나 그 강도는 조금 약하고, 근대화의 물결에 휩싸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시대를 향해 일갈을 하고자 하는 모습도 보이나 그것도 주된 것은 아닌 것 같고, 하여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님의 사람을 향한 시선, 이전보다 사람에 더 집중한 시선이었습니다. 전작들에서는 시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캐릭터를 활용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의 삶과 희로애락에 보다 집중하고 있는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칼날의 방향을 개인으로 조금 틀되, 그냥 찌르는 것이 아니라 치유를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 또한 강하게 받았습니다.  


#2 쓸쓸함

이 작품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저는 '쓸쓸함'이라고 하겠습니다.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들이 모두 다 참 쓸쓸한 삶을 살고 있고 외롭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또는 빈민 수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던지 간에요. 그러다 보니 소설 전체가 참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소설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면 또한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그런데 무리해서 이런 쓸쓸함과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작가는 그대로 물 흐르듯이 그 쓸쓸함과 외로움을 시종일관 유지합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중립을 유지하면서 냉정을 유지하면서 써 내려간 것이지요.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3 수작은 아니나 울림은 있다

솔직히 이 소설은 그리 재미가 있지도 또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인상 깊은 문장들


건물을 무엇으로 짓느냐고? 결국은 돈과 권력이 결정한다. 그런 것들이 결정한 기억만 형상화되어 오래 남는다.


쌀밥은 오직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에게만 그 엄숙한 권리가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양지에 서는 일은 간단하다. 권력을 잡은 축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살피고 똑같은 말이 아니라 유사한 단어를 구사해서 원래 자기도 같은 주장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린다.


결정된 힘에 의하여 조금씩 떨어지는 이익으로 우리는 성장할 것이었다.


나는 길 한복판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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