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에 살고, 권세에 죽는다
자신의 권위를 절대 침범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현인이면서 어리석은 자에게 굽히는 것은
권세가 가볍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이면서 능히 현인을 복종시키는 것은
권세가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난세(難勢)』
# 역사를 보면 평범한(또는 많이 모자란) 임금 밑에서 생고생하는, 능력이 뛰어난 신하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니, 역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습니다. 신하만 한 임금이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은 역사에서 흔한 일입니다, 동서고금을 무론 하고요. 하물며, 그 유명한 공자도 그랬습니다. 공자가 섬겼던 그의 고국 노나라의 왕은 능력이 그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그런 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단 한순간도 딴마음을 품지 않았으며 왕을 지극히 섬겼습니다.
한비자는 그 탁월한 공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단 한 가지 이유를 얘기합니다. 왕은 그 능력 유무에 상관없이, 나면서부터 최고 자리에 앉아 있을 권세를 가지고 있었고 공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잘해야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까지밖에 갈 수 없는 신분이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왕이, 심지어 나라를 말아먹는 지경까지 이르러서도 자리를 보존하고 버틸 수 있는 것은 그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권세 때문입니다. 공자는 왕이 될 수 없는 신분의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순응했습니다. 역모를 꾀하는 이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입니다. 운이 좋아서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삽질을 해대면서 말이지요.
이런 역모(?)는 현대 기업 조직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오너가 내에 분쟁이 많은데요, 아버지가 지명한 후계자를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반기를 드는, 소위 '형제의 난'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똑같이 배우고 대접받고 자랐는데 자신이 왜 그 자리를 가질 수 없는지 용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장님이, 오너님이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책임을 묻고 성과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딱 하나입니다. 그들이 모든 직원들보다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닙니다. 단지 그 권위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똑똑함과 성과만을 가지고 사장의, 고위직들의 자리가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받은 권위가 그 자리를 유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군주란 토양이고 신하란 초목입니다.
반드시 토양이 좋아야만 그런 뒤에 초목이 크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 군주의 힘입니다. 신하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난 이(難 二)』
# 토양이 없는데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왕은 자신을 토양으로 여깁니다. 부하들이 아무리 똑똑하게 혼자 잘 서 있는 것 같아도 그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너는 나 없이는 절대로 서 있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임금의 권위라는 토양 위에 네가 서 있는 것이고, 그 성과를 네가 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영양분을 잘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뿌리박고 목숨 유지하고 있는 '아랫것'들이 같이 놀려고 하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임금, 사장님/오너님은 밑에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비슷해진다는 것 자체가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본인의 자리가 위험해집니다. 권위를 잃어서 자리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은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사장님/오너님들은 부하들이 잘하면 돈으로 보상해주지, 세력을 절대 더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인의 공적을 기반으로 자신의 세력을 쌓으려고 하면 찍어내 버립니다.
대신이 군주와 비슷해지는 것은
어지러워지는 길이다
『설의(設疑)』
일본 유명 야구 선수 중에 기요하라 가즈히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한 타자였고 스타플레이어였습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홈런을 치고 들어 오는데 당시 감독이 청한 하이-파이브를 거절하여 구단 수뇌부의 눈밖에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형님 리더십을 발휘했던 기요하라가 팀웤을 중시 여기는 자이언츠의 조직 문화에 맞지 않았던 것이 눈밖에 난 근원적인 원인이라고도 합니다. 하이-파이브는 사소한 것이지만, 감독이 청해 오면 공손하고 기쁜 자세로 호응해주는 것이 권위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감히, 감독이 청하는 것을 거절해?'
기요하라 가즈히로 (1967 ~ ) . 현역시절 위대한 야구 선수였습니다만, 은퇴 후의 생활은 많이 안타깝습니다.
"다스리는 일은 맡은 직분을 넘지 말며
비록 알더라도 말하지 말라"
『난 삼(難 三)』
# 결국, 사장님이 부하직원에게 원하는 것은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되, 선을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을 넘으면 응징당합니다. 자기 일이 아닌데 아는 체하는 것도 곤란합니다. 그냥 본인 일, 열심히 해서 성과 내고 본인 몫만을 챙기기를 원합니다. 오지랖 넓은 건 일상생활에서도 피곤하지만, 조직 사회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자리를 내놓게 되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상급자, 최종적으로는 사장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