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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Oct 09. 2020

알렉산더 해밀턴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4

누가 볼까 두려워 꽁꽁 숨겨둔 책은 아닙니다만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았을 때 반응이 조금 두렵기는 합니다. 방대한 분량에, 평전의 형태를 띤 미국 독립 전쟁 및 건국 초기 역사라니. 읽기는 쉽지 않으나 다 읽고 나면 머리가 조금은 성장한 듯한 느낌을 주는 책,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에 참여를 결정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당연히 '어떤 책을 소개할 것이냐'였습니다. 제법 많은 책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지금 소개하려는 '알렉산더 해밀턴'으로 마음이 자꾸 가더군요.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재미있는 게 사람 얘기'라는 개인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읽는데 힘들었으나 다 읽고 나니 뿌듯했던, 그리고 내 머리도 즐거워했던, 그런 책입니다.  


책 개요

- '알렉산더 해밀턴', 론 처노 지음, 서종민·김지연 옮김, 21세기북스
 (본문만 1,331페이지, 참고문헌 포함하면 1,426페이지)
- 무게 : 약 2.3 킬로그램

   

   책을 구입하게 된 경로부터가 다른 책들과는 달랐습니다. 원래 서점에 가서 기웃거리거나 온라인 서점을 서핑하면서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두 사람(조승연 작가와 앨런 그린스펀)의 추천을 받아서 구입한 책입니다. 물론, 처음 책을 받는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바로 든 것은 함정입니다. 책 페이지 수는 무려 1,331페이지(주석을 포함하면 1,426페이지), 무게 2.3킬로그램입니다. (아령으로 활용 가능합니다, 진짜입니다)


어디에 있었을까?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실 책꽂이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옆에 있는 책 '중국인 이야기'도 이 프로젝트에 소개를 고려했던 책 중 하나입니다. 사진을 보고 나니, 책들도 참 끼리끼리 논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이 좁아서 책을 살 때마다 아내에게 구박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본 순간 아내의 표정이 잊히지 않네요. 입을 쩍 벌리더니, 잔소리도 안 하더군요. 크고 무겁고 두꺼운 책이라 보관하기가 쉽지 않아 아내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지 모릅니다. 여담입니다만, 책꽂이로 부족해서 집 안의 빈 공간이라는 공간에는 전부 다 책을 넣어 놨는데, 언제 라이브 방송으로 헌책 판매장터라도 한 번 열어야겠습니다. 집안 곳곳에 '잃어버린 책'들이 많이 있어서요. '내 취향이 정상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두께가 무시무시합니다. 일반적인 책 거의 3권 정도 두께입니다.
두꺼워서 사진 찍기도 힘듭니다


왜 구입했을까?


   역사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역사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공부도 되고, 무언가 머리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해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조금 고상하게 설명하자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로 보고, 현재와 미래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조금 저렴한 표현을 빌려 설명하면 '과거에 한 삽질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읽습니다.


   특히, 교과서식인, 연대기적 서술 방식의 역사책보다는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그 시대와 공간을 바라보고 해석하여 서술한 평전을 좋아합니다. 모든 저술 분야가 그렇습니다만, 평전이 특히 어려운 분야인 것이 개인과 그 개인이 살던 시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해석하고 써야 하는데, 역사적인 인물일수록 그 작업이 정말 어렵고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좋은 평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우연히 조승연 작가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조승연 작가가 꼽는 역사책 Best 3' 였고요(동영상 full본은 다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s_ysLdKIIkA (3분 36초부터 이 책이 소개됩니다.) 역사 애호가로 자부하는 사람이기에, 무언가에 홀린 듯(저는 조승연 님이 작가라는 사실만 아는, 그 이외에 그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클릭을 했고,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넋을 잃고 동영상을 시청을 했으며, 그날로 바로 이 책을, 그것도 교보문고에서 '바로드림' 서비스로 주문을 했습니다. 뭐, 이때까지는 나름 괜찮았습니다. 조승연 작가의 말대로 '한번 열면 쭉 읽게 될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더군요. 책을 서점에서 받는 순간, 아차 했습니다.(집으로 배송을 시켰어야 했습니다.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더군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조 작가님은 뮤지컬 관람 전에 배경 지식을 쌓고자 원서로(원서도 700페이지가 넘는답니다) 읽었고 본인 어머님께도 권해서 어머님도 '쭉 읽으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 결정적으로 넘어가서 사게 된 것이지요. 하여간, 귀 얇으면 평생 고생입니다.

 


한 번 열면 쭉 읽게 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추천인은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인데요, 그의 책인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이 책도 굉장히 좋은 책입니다) 추천받았습니다. 현대사회 자본주의의 원형이자 자본주의 자체인 미국의 역사를,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으로 풀어간 책인데,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이 책 2장 제목이 '두 개의 미국'인데, 주요 내용은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머스 제퍼슨이 각각 꿈꾼 미국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책에서 그린스펀은 이 둘의 차이를 아래의 문장으로 설명하는데요, 이처럼 현재 미국의 경제 및 정치 시스템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또 있을까요?


해밀턴은 미국이 제조업, 통상, 도시로 뒷받침되는 상업 공화국이 되기를 원했다. 반면 제퍼슨은 미국이 농업 중심의 탈중심화된 공화국으로 남기를 원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


이 책의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은 어떤 사람인가?

   

     평전이다 보니, 주인공에 대한 얘기가 바로 그 책의 주요 내용이 됩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입니다. 현대 미국 재무 행정 및 경제 시스템의 근간 및 원형을 만든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는 독립 전쟁 중에는 독립군 총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이 가장 신임했던 참모였고, 독립 전쟁에 직접 참전해서 전공을 남긴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인데 '현명한 행정 체계를 통해 정부에 영속성이라는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건국 초기 미국 행정 시스템 거의 전반을 설계하고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사회에 영향력을 많이 끼친 정치 팸플렛이라고 불리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작성을 주도하고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여 현행 미국 연방헌법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업은 변호사였는데 매우 유능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고 유명한 사건들을 맡아 승소한 경우도 많습니다(본인이 무죄라고 생각한 사람만 변호했다고 합니다). 지독한 워커홀릭에 다재다능하였으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노력하고 계발하는 사람인지라, 일단 맡은 일에서는 예외 없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 만일 워싱턴을 국가의 아버지라고, 또 매디슨을 헌법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알렉산더 해밀턴은 확실히 미국 정부의 아버지였다.
  
   - 해밀턴은 철학적 깊이, 행정적 전문성, 정책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 점에서는 워싱터 수하의 어느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 갓 탄생한 미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자 주요 설계사로서 해밀턴은 헌법적 원칙들을 받들었고 이를 광범위한 생활에 녹여 넣으며 추상적인 관념들을 제도적인 현실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실용적인 태도로 포괄적 프로그램들을 여럿 계획했다. 예산 제도, 장기채, 조세 제도, 중앙은행, 세관 체제, 연안경비대를 포함하여 근대 국민국가라는 조직을 용케도 부드럽게 운영(하였다)

   - 제퍼슨이 미국 정치 담론의 정수가 될 만한 시를 썼다면, 해밀턴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경영에 대한 산문을 쓴 인물이다.

   - 제퍼슨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보다 풍부하게 표현해낸 인물이라면, 해밀턴은 경제적 기회에 대해 좀 더 섬세한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 해밀턴은 스스로 발전하는 독학자의 표본이었고, 자투리 시간을 모아 자기 자신을 개선하는 데 모조리 사용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와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이,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가 죽게 된 이유부터가 어이가 없는데, 평생의 숙적이었던 애런 버(미국 부통령을 지냈습니다)와 결투를 벌이던 중 부상을 입어 생을 마감했습니다(그 당시에 결투는 금지되기는 했습니다만 공공연히 행해지던, 개인 간 원한을 해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결투의 원인이, 해밀턴이 애런 버를 말 그대로 평생 약 올리고 모욕하고 빈정 상하게 했기 때문이고 이를 참다 참다 애런 버가 결투를 요청하여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정치판이 없던 일도 만들어내는, 오늘날과 별반 다름없는 저급한 수준이었기에 해밀턴에게 억울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애런 버도 그에 못지않게 권모술수에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어찌 보면 더 비열한 사람이었지만, 그랬던 그조차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는 점에서 해밀턴의 캐릭터가 어땠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거기에 더해 정치·행정적으로 그가 일을 하는 스타일은, 전투 형태로 따지면 공성전, 즉 성(목표)을 향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공격하여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이끌고 정복하듯이 결과를 얻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가 똑똑하고 탁월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었습니다만, 타협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매번 전투를 하다보니 적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 알렉산더 해밀턴은 그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에 본질적으로 대중에게 맞서는 비뚤어진 자부심을 느끼는 외톨이 지식인이었다.

   - 그는 유명세를 추구하는 정치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로 결심한 정치인이었다.

   - 해밀턴은 언제나 어떤 결과가 뒤따를지에 관계없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 정치에서는 사실이 아닌 외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확신했던 해밀턴은 어떠한 오해의 티끌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애썼다.

   - 말솜씨가 좋았던 데다 양날의 검 같은 유머 감각을 가졌던 해밀턴은 자신의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더 상처 주는 경우도 있었으며, 토론할 때는 너무나 영민하게 말했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들조차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당황스러울 만큼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했다.

   - 해밀턴이 자신에게 매우 자명한 것들을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때에는 크게 당황하는 일도 있음을 알아차렸다. 두뇌가 너무 명민한 탓에, 자신만큼 두뇌 회전이 빠르지 못한 사람들에겐 자칫 관대하지 못하게 굴기도 했었던 것이다.

   - 해밀턴은 현명한 침묵을 지킬 줄 몰랐다.

   - 아름다울 만치 정돈된 그의 사고 속에는 완전히 소화된 아이디어들이 알맞은 자리에 차곡차곡 들어가 있었고, 그는 그것들을 내키는 대로 꺼내서 빠른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 자신의 혀나 펜, 그리고 자기 노출적인 습관을 제대로 주체하지 못했던 해밀턴은 결국 스스로를 철두철미하게 제어했던 제퍼슨 앞에서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었고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영국 식민지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역시 그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건너와 어렵게 공부하고, 뉴욕 명문가의 딸과 결혼하여 정치적, 경제적인 입지를 마련하였으며, 당대 최고로 센세이셔널했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상대 여자는 유부녀였는데, 현재 관점으로 보면 꽃뱀에 가까웠고 부부 사기단에 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평생 여자를 좋아했는데, 심지어 처형과도 남들이 보면 오해할만한 말과 행동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정에 굶주린 성장기를 보냈다는 것이 변명이 되기는 궁색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가족 사랑은 지극하여 지극 정성으로 돌봤습니다.


   - 저속한 삶에서 탈출한 어린 영웅이 부도덕한 협잡꾼 한 쌍에 의해 다시 유혹에 빠져 버린다는 그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디킨스의 소설 같은 면모를 드러내 보인다.

   -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해밀턴은 로어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1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별장을 짓는 '다정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책을 읽어야 할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읽기를 추천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현대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정치, 경제, 행정 시스템의 근원과 그렇게 구축된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로 요약 가능한 미국 현대 정치사의 뿌리가 건국 당시부터 내려졌음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등 세계 제1의 강대국인 미국의 건국사를 이 정도 분량과 quality로 읽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까지 여겨집니다. 둘째는 해밀턴이라는 인물의 매력입니다. 물론 단점, 그것도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열정과 본인의 일에 대한 헌신, 그리고 불굴의 의지와 노력은, 상투적이기는 합니다만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영웅에 대한 찬가가 아닙니다. 주인공인 해밀턴을 비롯하여 당대 인물들에 대해, 철저한 고증과 증거를 바탕으로 그들의 장단점을 균형감 있게, 적나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미 뿜뿜 풍기는,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아니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비열하고 저급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당시 정치판이 얼마나 저급했고 거짓말과 권모술수가 난무했는지를 보면 기도 안 찹니다.




책으로 손목 운동을 하고 싶다면 : ★

인내심과 꾸준함을 시험하고 싶다면 : ★★

미국 건국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 ★★★★

천재가 열심히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다면 :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글 1~2편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 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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