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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Dec 19. 2020

미국의 본업은 사업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 외 1, 세종서적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전 미국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1987년 ~ 2006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아들 조지 W. 부시까지 총 4명입니다)과 영국 'Economist'지 칼럼니스트인 에이드리언 울드리지가 공저한 책입니다(그가 다른 사람과 공저한 책 '기업의 역사'도 읽고 싶은데, 절판이네요).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조금 더 크게 얘기하면 미국 경제사입니다. 내용이 충실하고 재미있으며, 유익하고 문장도 간결해서 읽기가 편한 좋은 책입니다. 200년 이상되는 미국 경제사를 한 권으로 쓰다 보니 지나치게 간략하게 설명한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자세히 쓰려고 했다가는 몇 권으로도 모자랐을 겁니다.


   책의 논조는 '많이' 오른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린스펀 자신이 공화당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치적인 성향이 다른 분들이 읽으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경제사를, 그것도 한 권으로 이렇게 읽기 좋게 정리해놓은 부분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읽을 때 비판적으로 읽으면 되겠지요, 취할 것만 취하고.


앨런 그린스펀(1926년 3월 6일)과 애드리안 울드리지(1959년 11월 11일 ~ )




미국의 본업은 사업


  '미국의 본업은 사업', 이 책 6장의 제목입니다. 이 한마디가 이 책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자체가 비즈니스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정의될 수 있는 나라가 지구 상에 몇 개나 될까요? 미국이라는 나라, 참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비즈니스'의 정의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 "any activity or enterprise entered into for profit." (이익에 연관된 모든 행동 또는 산업) 즉, 이익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비즈니스라 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어떤 도덕적, 윤리적인 가치 판단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익을 낼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금융업도 비즈니스고 마약업도 비즈니스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미국이 최근에 이런 기조를 더욱 강화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 이익을 주면 친구, 어제까지 이익을 줬더라도 오늘 뭐라도 안 주면 적, 그러다가 다시 이익이 되면 친구, 이런 무한 루프 스테이션을 돌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 중심에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있습니다.(대통령이 바뀌어도 이런 미국의 움직임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트럼프는 인상 쓰고 때리고 바이든은 웃으면서 때린다 정도라고나 할까요?)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원형, 모델, 벤치마킹 대상을 찾고 싶다면 미국을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자본주의 학습 교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어떤 분야, 산업에서건 그럴 것입니다.




미국인은 영국인이 신사를, 프랑스인이 지식인을, 독일인이 학자를 바라보는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사업가를 바라보았다

"미국만큼 부가 애착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나라를 알지 못한다"
- A. 토크빌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사업가를, 창의적인 사업가를 거의 신처럼 떠받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나 성공한 사업가에 대해서 존경을 표하기는 합니다만, 이 나라는 유독 심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이 대접받고 존경받는다면, 미국에서는 창의적이고 성공한 사업가가 그 이상의 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면에는 미국인들의 '부', '재산'에 대한 애착, 동경, 경외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돈 가진 사람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그렇게 성공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부에 대한 애착과 갈망이 큰 것이지요. 즉, 기본적으로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좋아합니다만, 미국인들은 특히 그걸 대놓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낯간지러워하지 않는 것이지요.




해밀턴은 미국이 제조업, 통상, 도시로 뒷받침되는 상업 공화국이 되기를 원했다. 제퍼슨은 미국이 농업 중심의 탈중심화된 공화국으로 남기를 원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입니다. 미국 행정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현대 미국 경제 및 행정 체계 전반을 설계하고 자리 잡게 한 인물입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3대 대통령입니다. 해밀턴과는 갈등 및 대립했던 사람이고요.


   이 둘은 출신 성분이 달랐습니다. 해밀턴은 영국 식민지였던 서인도 제도 출신, 즉 아무것도 없이 자수성가한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었고(물론 결혼을 뉴욕 명문가랑 해서 입지를 다지기는 했습니다만), 제퍼슨은 버지니아 대지주 출신입니다. 그러니 둘이 꿈꿨던 미국이 달랐을 수밖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현재 미국은 두 사람이 꿈꾸던 대로 됐습니다. 현재 미국은, 제조업은 좀 그렇습니다만 상업 및 첨단 산업, 서비스업이 최고 수준인 공화국이며, 세계 제1의 농업 국가이기도 합니다. 상호 대립한 것 같으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 두 견해가 각각 자리를 잡고 미국을 지탱하며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2개의 축이 된 것입니다. 이 두 부분에서 자본주의의 전형이자 모범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각 분야에서 세계 최강으로 군림한다는 것,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제퍼슨(1743년 4월 13일~1826년 7월 4일)과 알렉산더 해밀턴(1755년 1월 11일~1804년 7월 12일)




하딩과 쿨리지는 사회 발전의 동력원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고 믿었다


레이건은 기업에 대한 본능적 믿음을 갖고 있었다. 기업은 부를 창출하고 정부는 그 과실을 따먹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워런 G 하딩은 미국 34대 대통령이고, 캘빈 쿨리지는 미국 30대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아니라 -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기업이라고 믿었다고 하네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기업이 추구하는 기술 발전과 돈, 그리고 이윤 획득으로 본 것입니다. 가장 자본주의적이면서 가장 원초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원하고 육성할 대상을 명확하게 해서, 사회의 동력을 모은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사회적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마인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만일 이런 국정 철학을 표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 상황이 지속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봐도,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한 철학입니다 :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기업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 40대 대통령입니다. 이 사람은 더 노골적입니다. 아니, 더 원색적입니다. '기업이 돈을 벌면 정부는 그걸 따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정부는 친기업적인 정책을 펴서 많이 벌게 도와줘야겠지요.


   일부이기는 합니다만, 대통령이 이런 자본주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나라가 자본주의의 원형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라가 운영되는 방향성이 명확할 것이고요. 물론, 단점도 그에 못지않게 어마 무시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단점을 취할 것이냐의 문제로 접근을 해보면, 자본주의적인 국가 통치 철학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국정 운영 철학들도 이에 못지않은 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일 테니 말입니다.




창조와 파괴는 샴쌍둥이와 같다. 그 과정은 과거의 생산적인 자산과 그에 연계된 일자리를 새로운 기술과 일자리로 대체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개인적인 생각에, 경제 분야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바로미터 중 하나가 '창조적 파괴'를 바라보는 관점 및 이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는 창조적인 파괴를 옹호하지 않습니다. 보수는 창조적 파괴를 장려합니다. 그런데 창조적 파괴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창조적 파괴의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온라인 주문 및 배송으로 시장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오프라인 시장이 상대적으로 많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시장의 확대로 인한 오프라인 시장의 축소 및 구조정, 이것도 시장 변화에 따른 창조적 파괴의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온라인 상거래로 배송이 증가대되다 보니 물류 창고 및 배송 센터에 수화물을 분류하는 인력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어 채용을 늘렸습니다. 그런데 기업가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 하고, 그래서 물류 및 배송 자동화를 추진합니다. 그 결과, 졸지에 물류 창고, 배송 센터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직장을 잃습니다. 즉, 기술 진보에 의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기술 진보 및 산업 트렌드의 변화는 창조적 파괴를 동반합니다. 증기기관이 방직업계에 도입될 때도 그랬고 온라인 시장으로 시장 트렌드가 변화하면서도 그렇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풀어가고,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균형 있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인데, 근래의 우리나라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타다' 서비스 중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 기술이 진보하는 것, 그로 인한 산업 트렌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게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단기 처방으로, 땜빵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IT 혁명이 생산성, 특히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국제금융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 월가 투자은행의 국제시장 점유율은 50퍼센트로 늘어났다. ... 현재 미국의 펀드매니저가 관리하는 자산이 전 세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의 44퍼센트보다 늘어난 55퍼센트다


   미국이 세계 돈줄의 55%를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의 핵심인 돈줄을 미국이 55% 쥐고 운영하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비유하면 어떤 산업이 어려워지고 불황에 빠지는 것은 팔다리 골절이라면, 돈의 흐름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혈액 순환이 안 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칫하다간 돈줄이 말리는 아찔한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혈액 순환을 통제하는 나라인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돈으로 돈을 번다, 더 많은 돈을 번다, 자본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걸 미국은 너무나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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