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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Nov 30. 2020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맹자』, 맹자, 신원문화사

   '맹자'는 전국 시대의 사상가인 '맹자'(B.C 372년 ~ B.C289년)의 언행을 기록한 책입니다. 맹자라는 사람 및 사상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습니다만, 공자의 사상적 후계자요 유가 철학의 밑바탕을 만든 주요 인물들 가운데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다 정도로 간단히 얘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맹자(B.C 372년 ~ B.C289년)




   맹자는 자본주의, 더 근본적으로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맹자' 본문에 산발적으로, 그리고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공자의 '논어'와 달리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조세 체계 등 국가 경제 전반에 걸친 얘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지는 않습니다만 경제와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에 대해 직관적으로 쉽게 설명합니다.



대체로 물건의 질이 같지 않은 것이 물건의 실정이다. 품질에 따라 값은 서로 배나 되고 5배 또는 10배, 1백 배, 1천 배나 1만 배가 되기도 한다.... 좋은 신과 나쁜 신이 같은 값이라면 사람들이 어찌 좋은 신을 만들겠는가.
- 등문공장구 상


   세상에는 똑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도 하더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똑같은 실크 스카프인데 Hermes 정품은 백화점에서 7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살 수 있지만 Hermes를 copy 한 제품은 10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맹자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물건의 '질'로 봤습니다. 물론 Hermes 정품이 비싼 이유가 재료와 질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브랜드 가치라는 것이 반영되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맹자가 말한 질에는 이런 유무형의 요소들이 다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자 시대에는 '누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느냐가 제품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을 것이고, 그것이 가격에 반영되어 가격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니 말입니다.(부연하면 '누가'가 브랜드 가치이겠지요)


   좋은 질의 물건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경쟁자와 비교하여 탁월한 물건/서비스를 보다 좋은 가격에 팔아 수입을 늘리고자 하는 욕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 있어 왔습니다. 소비자들은 같은 값이면 더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원합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입니다. 이 두 가지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뿐 아니라 경제를, 생산과 소비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한 사람의 몸에도 백공이 만든 것이 다 필요한데, 반드시 그것을 다 자기가 만든 다음에야 쓰게 된다면 이것은 천하 사람들을 이끌어다가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 등문공장구 상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제품을 생산할 때 분업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강조한 것이 18세기 후반입니다(그 유명한 핀 생산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맹자는 이보다 거의 2천 년 전인 기원전 2~3세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분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필요를 스스로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옷과 농기구를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가능은 하나 사회적 비효율은 엄청날 것입니다. 이를 맹자는 알고 있었기에 사회적 분업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모두가 머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며, 손발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왕 같은 지배 계층이나 본인같이 머리 쓰는 사람들은 손발 쓰는 사람들이 먹여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만.)


   사회적 분업은 예나 지금이나 자원의 배분 및 사용이 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근본 철학과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 분업 덕분에 사람들은 본인 본연의 일에 집중하면서 효율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옛날에 시장이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과 바꾸는 것이고 유사(有司)는 이를 감독할 뿐이었다. 그런데 한 천박한 사내가 있어 반드시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좌우를 두루 살피며 시장의 이익을 독점하니, 사람들은 그를 모두 천하게 여겼다. 이런 까닭에 세금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장사꾼에게 세금을 받게 된 것은 이 천한 사내에게서부터 시작됐다. 
- 공손추장구 상


   저는 앞으로 시장(market)을 정의해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맹자가 내린 정의, 즉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바꾸는 곳'이라고 대답하려고 합니다. 시장은 이게 처음이자 끝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교환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시초에는 세금이니 정부의 간섭이니 하는 것이 필요 없었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는 자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 교란의 형태가 이익을 독점하는 것입니다. 시장이라는 곳이 원래 돈이든 물건이든 서비스든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는데 누군가 독점을 하는 순간, 이 자연스러움이 깨지고 왜곡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정부가 지켜만 보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세금'을 징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탈레스가 올리브유 짜는 기계를 독점하여 돈을 벌었던 사례를 들며 얘기한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이윤 확보의 끝판왕은 '독점'입니다.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독점'은 꿈입니다. 누구나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꿈꿉니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꿈입니다. 설령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그리 길지 못합니다. 정부에서 시장 왜곡 및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강력하게 조치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 하지요? 맹자의 얘기를 빌리면, 독점이라는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라는 또 다른 비효율이 만들어진 것이니 말입니다. 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효율성이 현저히 개선되는 것이겠지요? 비교 대상이 없어서 판단이 어렵기는 하네요.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곡식이 물과 불처럼 넉넉하도록 만든다 
- 진심장구 상

백성들이란 항산(恒産)이 있으면 항심(恒心)도 있고,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습니다
- 등문공장구 상


   성인, 아니 정치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경제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가 왜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요? 왜 매일 일자리 일자리 타령을 할까요? 국민들이 불쌍해서? 먹고사는 게 해결 안 되면 국민들이 너무 힘드니까? 조금 긍정적으로 보면, 정치인들이 이렇게 박애주의적이고 말랑말랑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맹자의 표현을 빌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경제 문제,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항산(恒産)'은 꾸준한 수입/소득을 의미합니다. 꾸준한 수입,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일정 수준의 소득이 없으면 국민들은 '항심(恒心)' 즉 꾸준한, 일관된 마음이 없어지기 때문이며,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알 수 없어서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들이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권력'을 잃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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