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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Nov 29. 2020

부유함은 사람의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추구할 수 있다

『사기 열전 下』,「화식열전」, 사마천, 까치글방

   사기(史記)는 중국 한나라(B.C 202년 ~ A.D 220년) 때 관료 출신의 역사가인 사마천(B.C 145년 ~ B.C 86년)이 쓴 역사서입니다. 표/서, 본기, 세가,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열전(列傳)은 말 그대로 사람 얘기라 언제 읽어도 재미있고 교훈을 줍니다.



사기(까치글방)과 저자인 사마천(기원전 145년 ~ 기원전 86년)


   오늘 소개할 내용은 '사기 열전' 중 마지막 편인 '화식열전'입니다. '화식(貨殖)'은 '재물을 번성케 한다, 늘린다'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주요 내용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부자들과 부유한 지역들에 대한 얘기이고 부자가 되는 이치에 대한 얘기입니다. 당대의 부자 지역과 부자들에 대한 안내서라고나 할까요.


   물론, 현대 흔한 자기 계발서들처럼 누가 어찌어찌해서 온갖 역경을 이기고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는 뻔한 성공 스토리만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그 아래에 깔린 기본적인 원리를 설명하는데 힘을 더 많이 들입니다. 당대에 지역별 지리적인 강점과 약점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어떻게 그 지역들이, 그 사람들이 부유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매거진에서 소개할 책 중에 '맹자'와 '한비자'가 있는데요, 사마천은 '화식열전'을 통해, 최소한 경제관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이 맹자와 한비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밝히고 있습니다. 사마천은 경제관이 확실한 사람이었으며 자본주의자라 칭해도 손색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그 힘을 다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힘을 다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이것이 사마천이 생각한 세상 사는 이치였습니다. 그리고 부를 축적하는 원리였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우선 최선을 다해 그것을 갖기 위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돈, 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식열전'을 읽다 보면 노력 없이 부자가 된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 더 확장하면, 지리적으로 불리한 지역이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 동네가 된 사례를 여럿 소개하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능력을 힘껏 발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지역은 없습니다. 힘을 다했느냐 다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현인(賢人)이 조정에 들어가 일을 깊게 도모하거나 정사(政事)를 토론하고 믿음을 지켜 절개에 죽는 것이나, 선비가 바위 동굴에 은거하여 세상에 명성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결국은 부귀를 위한 것이다

건장한 병사가 전쟁 중에 성을 공격할 때 먼저 오르거나, 적진을 함락시키고, 적군 장수의 목을 베고 깃발을 빼앗으며 돌멩이와 화살을 무릅쓰고 전진하며 화상을 당할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 등은 모두 후한 상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천하는 희희락락 이익을 위해서 모여들고, 소란하게 이익 때문에 떠난다'


   사마천은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을 '인센티브'로 봤습니다. 선비들이 세상에서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도 결국 부귀를 위한 것이요,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거는 것도 결국 보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비자'에 나타난 '한비'의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람들은 추상적인 명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얻는 것이 있으니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이익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정승 개 죽은 데는 문상을 가도 정승 죽은 데는 문상을 안 간다'라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나에게 이익을 되는 곳에 가고, 이익이 없으면 떠나는 것입니다. 매정한 듯 하나, 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 중 하나입니다.




부유함이란 사람의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모두들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빈부의 이치란 누가 빼앗거나 부여해줄 수 없는 것이며, 기교 있는 자는 여유 있게 되고 영리하지 못한 자는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부를 추구하는, 조금 더 적나라하게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기에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본능이니 억눌러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냥 이러한 본능을 인정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머뭇거린다면 이성에 충실한 사람이요, '예'라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면 본능임을 인정하고 최소한 '입으로라도' 부자가 될 준비가 될 사람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는 부끄러워할 것도, 숨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는데 제1 요건은, 욕심이 아니라 기교와 영리함입니다. 주어진 환경을 잘 분석하고 활용하면서 최대한 노력하는 것입니다.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만, 부자가 되는 원리를 누가 주입해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뻔한 얘기입니다만, 본인에게 달린 일입니다. 기교와 영리함을 가지려면 많은 노력과 공부, 그리고 trial & error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창고가 꽉 차야 예절을 알고, 옷과 음식이 넉넉해야 영욕(榮辱)을 안다'라고 하는 것이다

예의라는 것은 재산이 있으면 생기고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연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살고, 산이 깊어야 짐승이 노닐듯이, 사람이 부유해야만 비로소 인의를 행하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담보다 더 적나라하게, 왜 부가 필요한지,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사마천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 노릇하면서 살려면 부는 필수요소라는 얘기입니다. 예의, 인의라는 최고의 윤리적인 지향점도 결국 일정 수준의 부가 바탕이 돼야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마천의 얘기를 빌면,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게 아니라 곳간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라고 했는데, 일단 기본적인 물질적인 욕구가 채워져야 사람들에게 마음, 태도,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이 맹자의 이론을 참고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맹자의 영향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사나 도사, 여러가지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노심초사하며 재능을 다하는 것 또한 경제적인 수입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힘써서 생활하고, 약간 있는 사람은 지혜를 써서 더 불리고, 이미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시기를 노려 이익을 더 보려고 한다.

 

   누구나 경제적인 수입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생사,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요. 그런데 그 기저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깔려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빵집 주인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본인의 삶을 유지하려고 업에 임하지 세상을 이롭게 하고 남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이타심을 1순위에 두고 살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수입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나마 기반이 있는 사람은 그걸 더 불리고자 노력하고, 이미 부자인 사람도 더 많은 이익을 늘 추구하는 것입니다. '돈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이라고 했던가요? 이 부분에 대해 윤리적인 잣대를 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그런 것입니다.




무릇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 배 부자이면 그를 헐뜯고, 백배가 되면 그를 두려워하며, 천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의 하인이 되니, 이것은 사물의 이치이다.


   부자들을 헐뜯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고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제 재산의 최소 천배 이상되는 분의 머슴살이를 하고 있네요. 그런데 저는 최소한 두려워하거나 헐뜯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돈에는 초연한 척 정신 승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조금 부러워하고 어떻게 하면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해서, 영리하게 부를 쌓아갈까 하고 매일 고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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