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법치로 세상을 바로 세운다』, 김예호, 한길사
『한비자-법치로 세상을 바꾼다』는 김예호 님이 저술한 책입니다. (김예호 님은 '한비자'에 대한 연구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비자를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경 설명과 주석이 필요해서 열심히 찾았는데, 이 과정에서 간신히 찾은 책입니다. (한비자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해설 등을 해놓은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참고서(?) 끼고 고전 공부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은 예외입니다. 좋은 개론서요 설명서인 것이, 한비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거든요.
인간 본성이 "득이 되는 것을 좋아하고 해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이익을 추구하며 이 점은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객관적 상황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편안하고 이익이 되는 것을 취하고 위태롭고 해가 되는 것을 멀리하려는 것이 사람의 실질이다"
한비자에 나타난 인간 본성에 대한 기본 가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입니다. 인간 본성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에게 편하고 이익이 되는 것을 가능한 취하려 하고 위험하게 만들거나 손해가 되는 것은 또한 가능한 멀리 하려 합니다. 물론, 이익의 형태는 다양할 것이며 이는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인은 권력을, 장사꾼은 돈을, 월급쟁이는 승진을 추구하겠지요.
한비는 학문적 스승인 순자의 계보를 이어 '성악설'을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이 기저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습니다. (순서는 바뀌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선하기는 어렵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머리 아프니 여기서 stop하겠습니다) 그런데 한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성선설, 성악설보다 더 원초적인 '성리설(性利說)'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리설이라는 용어는 제가 만든 용어입니다) 이익이라, 정말 구체적이고 직관적이지 않나요? 열이면 아홉은 돈을 떠올리겠지만 말입니다^^
한비자는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동기에 한해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한비자는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사실을 토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을 선악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비는 인간의 이익 추구 동기 및 본성에 대해서 도덕적, 윤리적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본성이니 판단할 필요가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수학에서 말하는 Axiom(공리)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딴지를 거는 것은 뭐랑 같은 거냐면, 너 키가 왜 작아, 니 눈 새깔은 왜 그래라고 묻는 것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김예호 박사가 파악한, 한비자가 이러한 본성에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는 이유는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사실' 때문입니다. 한비가 활동하던 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국가 간 경쟁이 펼쳐지던 '전국(戰國)'시대입니다. 나라들끼리 목숨 걸고 싸우던 시기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하에서 국가 관점의 가장 고 중요한 이익은, 생존이었을 것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과 역량이 집중되어야 하는 상황이니, 이익 관점의 사고와 행동에 윤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다른 세상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겠지요. 가장 치열한 시기에 나온 가장 원초적인 이론이 아닐까 합니다. 전국책 등 전국 시대에 대한 역사책 등 자료들을 읽어보면 그 시대가 요즘 유행하는 사자성어인 '아시타비(我是他非)', 즉 '나는 옳고 남은 잘못됐다'의 끝판왕을 볼 수 있는 시대이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나는(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한 것이니) 옳고, 너는 (네가 살아남기 위해 나에게 피해를 줬으니) 틀렸다' 정도로 정리가 되겠네요.
자본주의 세상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자본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구체적으로 자본, 돈이라는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한비자의 이론을 따른다면, 이건 도덕적/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인간의 본성일 뿐이고 추구하는 이익의 형태가 자본과 돈일뿐입니다. 판단할 일도 아니고 판단 당했다고 기분 나빠하고 남 눈치 볼 일도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자로, 자본가로 사는 것은 어느 시대나 굉장한 멘털을 요구합니다. 부자, 자본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 상앙
법가 사상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상앙은 한술 더 뜹니다. 인간의 이익 추구라는 본성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이 본성을 거스르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사람들을 봅니다. 돈과 자본에 대해서, 경제적인 부를 얻고 획득하는 부분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윤리적/도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음, 본인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좋은데, 본성에 충실하고 나름의 기준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윤리적/도덕적 잣대로 판단하고 모욕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아시타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런 행동은 물의 흐름을 거꾸로 하려는 노력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성에 충실한 삶은 반드시 잘못되고 나쁜 삶이며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라고 보는 것 같은데, 그게 그럴까요?
자본가/자본주의자들이 생각보다 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이 아니면 세상이, 경제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이들이 없는 세상이 되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면, 이 시대의 대부분의 부자들/자본가들은 세금 낼 거 내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능한 도움을 주려하고 있으며, 월급 제때에 제대로 주려고 애쓰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당연한 의무라고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 솔직히 세금은 좀 많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 그렇다고 꼼수 써서 빠저 나가려고 발버둥 치지는 않습니다. 이건 어찌 보면 한비가 말한 '이익 추구'라는 본성에는 반하는 일이긴 합니다만,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