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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Dec 11. 2020

끔찍하게 경솔한 이 행동을 멈추시오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민음사

   '리어왕'은 그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그것도 4대 비극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 희곡은 읽기 힘들어하는 장르인데(예를 들어, 체호프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만, 그의 희곡은 아직 시작을 못했습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노력해서 읽었습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이 읽기가 힘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형식이 운문입니다. 운문체에 익숙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에게 쉽지 않습니다만, 이런저런 제약들을 극복하고서라도 읽어볼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구성이 단순하며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도 않고, 메시지가 분명해서 읽기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읽을 때마다 생각할 거리가 늘어나서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그게 또 읽는 재미요 보람이기도 합니다. 서평가인 로쟈님의 표현을 빌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고전이며, '텍스트-무한'입니다. 아무리 해석하고 관점을 달리해서 보고, 시대가 바뀌어도 닳지 않고 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줍니다.   



간달프 형님(이언 맥캘런)의 '리어왕' 포스터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년 4월 ~ 1616년 4월 23일) 초상화


    이런 어머어마한 '리어왕'을 자본주의자의 책 읽기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으며 한편으로는 부담이 컸습니다. 이게 올바른(?) 행동일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습니다. 하지만, 뭐 있습니까? 읽었으니 생각한 대로 쓰는 거죠.

 



그 지도를 가져오라. 짐은 이 왕국을
셋으로 나누었고, 노년의 걱정거리
힘 좋은 어깨 위로 훌훌 털어 넘겨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 향해 천천히
기어갈 결심을 굳혔노라. 짐의 사위 콘월과
못지않게 사랑하는 사위인 올바니여.
짐은 이제 앞날의 분쟁을 막기 위해
짐의 딸들 각각의 지참금을 지금 공표하기로
마음을 정했노라.


누가 짐을 이를테면 가장 사랑하는지.
그래서 효성과 자격 갖춰 요구하는 딸에게
최고상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의 주인공인 리어왕은 직업이 왕입니다. 그런 그가 사는 게 너무 힘들었는지, 세 딸과 사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본인은 여생을 편히 보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워낙에 고집불통인지라, 아무도 이런 왕의 결정을 말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상한(?) 시험을 치릅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최고로 좋은 부분을 주겠다고 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내 귀를 가장 즐겁게 하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곳을 물려주겠다는, 참 단순하고 쉬운(?) 테스트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당연히, 큰 딸과 작은 딸은 달달한 사랑 고백(?)으로 좋은 곳을 물려받고, 고지식하고 순진한 막내딸은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하고 프랑스 왕의 왕비가 되어 그냥 쫓겨나듯 결혼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의사결정은 리어왕을 비극으로 이끄는 가장 어리석은 의사결정이 되고 맙니다.


   현대식으로 얘기하면, 건물 수십 채인 아버지가, 딸 셋에게,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을 잘하면, 내가 가진 건물들 3 등분해서 순서대로 나눠줄게,라고 얘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즉, 죽기 전에, 유산을 미리 상속하는 것이지요. 그것도 본인 노후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고, 온전히 딸들에게 맡기고요.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신하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보위를 지키고
최대한 숙고하여 끔찍하게 경솔한
이 행동을 멈추시오


   다시 현대적으로 풀면, 재산 물려주는 것 멈추고, 생각을 다시 하고,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냥 경솔한 게 아니라, 끔찍하게 경솔한 이런 행동을 당장 멈추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한 고집불통 리어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곧바로 후회합니다. 모든 것을 나눠 물려받은 두 딸과 사위가 아버지 보살피기를 바로 귀찮아하거든요. 그러자, 리어왕은 크게 실망하고 후회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사람도 질책을 하고 본인도 스스로를 격렬하게 책망합니다. 늙기는 했으나, 시간이 주는 지혜는 습득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미쳐 버립니다.


당신이 왕관의 한가운데를
쪼개 양쪽을 다 줘버렸을 때 당신은 나귀
를 등에 업고 진창 속을 걸어간 거야


당신은 현명해지기 전까진 늙지 말았어야 했어


오 리어, 리어야!
(머리를 치며) 어리석음 들이고 소중한 판단력을
  내보낸
이 대문을 때려라.


   '리어왕'이 주는 최고의 현실적인 교훈은, 절대로, 자식들에게, 죽기 전에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남 일부 부자들이 우스개 소리로 요즘 이런다지요? 재산 물려줄 것 없다. 어차피 나 죽으면 지들끼리 다 알아서 한다.


   늙을수록 돈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어른들이 자주 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요즘 얘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리어왕에는 보다 문학적으로, 이렇게까지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넝마를 걸친 아비는
    자식들이 눈 돌리나
주머니 찬 아비는
   자식들이 친절하지


   보다 철저하게 자본주의자의 삶을 사는 것이, 평화롭게 생마무리하는 길인 같습니다. 쓸데없이 자식들 경쟁시키고 본인 앞에서 아부 떨게 하지 말고요. 자녀들을 어디까지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을 것 입니다만, 모든 것이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하면 모자람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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