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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Jan 13. 2021

진정한 시금석은 유용성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사피엔스'는 2015년도 11월에 출간되어 2016년 베스트셀러 7위(교보문고 집계)를 차지한 책입니다. 왜 베스트셀러임을 강조하냐면 이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인문/사회과학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던 것 같고,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가 그 호기심을 원망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귀 얇으면 평생 고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독특한 시각과 저자의 해박함을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책입니다. 동의 및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가 담겨 있기는 합니다만 (예를 들어, '수렵 채집 사회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지닌 사람은 보통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라든지요. 이해가 안 갑니다.) 인사이트를 주는 내용이 넘치고 책 구석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저자의 지적 깊이에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의 전공이 중세 역사 및 군(軍) 문화임을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넓고 깊은 사람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피엔스는 21세기의 신(新) 고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아는데 읽기는 어려우나 언젠가는 읽고 말리라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책을 고전이라고 한다면요)

   

유발 노아 하라리(1976년 2월 24일 ~ )과 '사피엔스' 표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후속 번역작이었던 '호모 데우스'가 더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 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느냐의 여부다

진정한 시금석은 유용성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이론이 지식이다.


   시금석은 말 그대로, 이 물질이 금인지 아닌지 판별해주는 돌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어떤 지식이 '금'인지 아닌지 보려면 그 지식이 인간에게 힘을 주느냐,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느냐를 보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맞다고 하면, 이 명제의 대우인 '인간에게 힘을 주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지 않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라고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조금 더 풀어보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모든 지식은 '쓸모'가 있었기에 현재 존재하고 있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말인 것 같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입니다. 쓸모가 있어서 사람들이 계속 '사용'했기에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워 보겠습니다 :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는 모든 지식은 '자본주의'에 쓸모가 있었기에 살아남았다. 일상의 언어로 풀어보면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은 먹고사는 문제에 도움이 되었기에 살아남았다. 저는 이게 맞다고 봅니다. 자본주의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명(또는 발견된) ism이라고 보면,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에 일정 부분 유용성을 증명했기에 살아남은 ism이라고 보면, 지식에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너무 많아서 식상하기까지 합니다만, 성공한 사람들, 특히 유명 정치인이나 사업가가 책을 추천하면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소개하는 책에 왜 이리 열광할까요? 성공한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이니 무언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원초적으로 얘기하면, 이들이 읽고 적용한 책을 나도 읽고 삶에 적용하면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성공할 수 있겠지 하고 기대하기 때문 아닐까요?


   한동안 플라톤을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지금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는데요, 트럼프가 플라톤을 즐겨 읽는다는 것을 어디에선가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특이한 사업가로, 방송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시기입니다. 미국이 자본주의 원형 국가라면, 트럼프는 자본주의자의 원형 같은 사람이지요) 사실 플라톤을 인생 책으로 꼽는 유명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서양인들 가운데요. 더 나아가 철학 공부를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눈을 떠서 부(富)를 쌓는 데 성공했다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들이 문학, 역사, 철학 등 소위 문·사·철을 읽으며, 마음에 평안을 얻고 휴식을 취하여 일을 더 열심히 할 동력을 얻어서 일에 집중해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들은 문학, 철학, 역사 공부를 통해 그들의 성공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그들만의 비법을 찾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경영서적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근원적인 그 무엇 말입니다. 테크닉을 익히는데 집중한 것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원리를 파악하고 그들의 비즈니스에 적용하기 위해 문·사·철을 읽고 공부한 것 아닐까요? 이들에게는 문·사·철이 주는 지식과 지혜가 가장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식이요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거죠, 철학자들은 철학의 원리를 찾고, 사업하는 사람들과 정치하는 사람들은 사업과 정치의 원리를 찾는 것입니다.


   특히 자본주의자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는 것만큼 성공에 확실히 도움되는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보고 이익이 남겠다 싶은 '자본'에 투자하면 성공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런 방법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시류와 유행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최소한 성공 확률은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더 보장이 되고요.




   지식이 힘이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이 유용성인 것도 맞습니다. 쓸모 있는 지식이 살아남는다는 부인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맹자 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세상 모든 학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학문이 쓸모가 있다고 늘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장하는 상대방이 어디냐,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고요? 저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나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삶을 살아가렵니다. 지식이나 사람이나 쓸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쓰임 받고 살아남는다. 특히나 이 냉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들을 쓰면서 정신이 번쩍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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