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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Dec 24. 2020

산업의 원흉인 만족감

『꿀벌의 우화』, 버나드 맨더빌, 문예출판사

   『꿀벌의 우화』는 네덜란드 태생 영국 작가인 버나드 맨더빌(1670년 11월 15일 ~ 1733년 1월 21일)의 저서입니다. 18세기 영국 배경의 일종의 우화집인데요, 당대 영국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가득합니다만 문제가 현대에 그 시각을 적용해도 별 무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구석이 다 악으로 가득한데 그래도 전체를 보면 낙원이었다' 같은 문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fact 아닌가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입니다.


1924년판 '꿀벌의 우화' 표지와 버너드 맨더빌(1670년 11월 15일 ~ 1733년 1월 21일). 그는 외과의사이기도 했습니다




산업의 원흉인 만족감


   맨더빌은 이 책에서 '변덕스러운 소비(이걸 전문용어로 '유행'이라고 합니다)가 경제와 시장을 굴러가게 하는 힘'이라고 요약했는데요, 탁월한 요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가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이 앞에 붙은 형용사 '변덕스러운'이 더 대단한 해석을 만들어 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변덕이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인지하고 사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소비 욕구가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니거든요. 일단 없이 사는 게 너무 많습니다. (없는 것 목록 적어보면 TV, 전자레인지, 진공청소기, 에어 프라이어, 자동차 등등입니다) 제 지인들은 우스개 소리로 '너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대한민국 대기업 3분의 2는 망할 거다'라고 얘기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유행은 전혀 모릅니다. 뭐 이런 캐릭터의 사람들 있지 않나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언젠가 유행이 되겠지'하며 그냥 고장 나거나 못 쓰게 될 때까지 개기는 사람들 말입니다. (극명한 예로, 저는 전화기 고장 나야 바꿉니다, 대략 3, 4년에 한 번쯤?)


   만약에 말입니다, 사람들이 제품에 '만족'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경제는 무너질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삼성 스마트 폰 갤럭시 첫 모델이 '갤럭시 S1'입니다. (2010년 3월 23일에 출시가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몇십 종의 모델이 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최초 모델에 사람들이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 아끼고 아껴서 사용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스마트폰 시장은 '죽었을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불만을 표현했고 제조업체들도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기 때문에 시장도 커지고 관련 산업들 모두가 발전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초기 스마트 폰 모델과 현재 모델들에 근본적인 기능이 추가되거나 혁신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통화되고, 인터넷 연결 및 검색 가능하고, 카메라 되고 등등, 이 각각의 기능들이 개선되는 과정에서 하드 웨어/소프트 웨어가 계속 좋아진 것입니다. 이 바탕에는 사람들의 불만족이 있습니다. 더 좋은 통화 품질, 더 나은 온라인 사용 환경, 더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를 요구한 것입니다. (제조업체들이 자진해서 '고객님들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지금 이게 불만이셔야 합니다'하며 계속 개선을 하고 신 모델을 내놓는 것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족하는 순간, 그 산업은 끝입니다. 그래서 모든 산업에서 유행을 얘기하고 유행을 선도하려고 하고 대중들에게 그것을 각인시켜 궁극적으로 소비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 불만족이라는 자본주의, 아니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게 소비재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본가들은 현재 자기에게 있는 자본의 양과 수준에 절대 만족하지 않습니다. 한 단계 더 내려가서, 부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의 양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부동산 투자자들은 현재 자기가 가진 부동산 양에 절대 만족하지 않고, 주식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창하게 투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삶은 어떤가요? 자신의 현재 수준, 경제적인 수준과 상황에 만족하면 발전이 있을까요?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거 형태가 가장 쉬운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고시원 살다 불만이 쌓여 월세 살고, 월세 살다가 불만 쌓이면 전세로, 전세에서 2년마다 이사 다니기 지겨우니 자가로(제가 살면서 겪은 주거형태의 변화입니다) 가고 싶은 것이 당연한 욕구이고,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크게는 경제가 돌아가고 작게는 나의 경제적인 수준이 나아지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이념이나 정치 및 경제체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국가에 빈부의 격차가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냥 인간의 삶 속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상수입니다. 본능에 기반하고 있는 ism입니다만 그래서 더욱 강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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