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피를 팔아 삶을 이어가는 사람 이야기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위화 작가를 좋아해서 이곳에서도 공유합니다.
허삼관 매혈기, 위화, 최용만 옮김, 푸른숲
* 한줄평 : 재미있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
1.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작품입니다. 무겁고 비극적인 전개가 가능한 소재요 이야기 구성입니다만 적절하게 강약을 조절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영리한 글쓰기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조금 엉뚱합니다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피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해석도 해가면서 읽었는데 그만큼 깊이 되새김질하며 읽었다는 반증도 될 것 같습니다.
하정우 감독 및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는데 평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작의 그 진한 페이소스(정서적 호소력)를 담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2. 중국 현대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는 것인데요,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 말 그대로 피를 팔아서 가족을 고비마다 구해내는 주인공 ‘허삼관’의 일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함과
예리함을 가지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보기 드문 수작입니다. 재미있고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이면서 결코 가볍지 않고 가슴 뭉클하게 하는 사연들이 가득한, 좋은 작품입니다.
3. 주인공 허삼관은 아들이 셋입니다만 그의 친아들은 그중 둘 뿐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친아들이 아닌 큰 아들을 위해서 가장 먼저 피를 팔고 (처음 피를 팔아 번 돈으로 결혼을 하는데 이미 그의 부인은 태중에 큰아들인 일락을 품고 있던 중 이었습니다), 또 가장 많은 피를, 본인의 생명을 걸고 팔게 됩니다. 처음에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이 사람 참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키운 자식이니
내 자식이라는 소박하면서도 단호한 결론을 내며 목숨 걸고 키운 것이지요.
4. 우선 서문 및 작가의 말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위화라는 작가는 참 독특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어떤 권위를 갖는다면, 아마도 그 권위는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만 유효할 것이다. 작품이 완성되면 작가의 권위는 점차 사라진다. 이제 더 이상 그는 작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몇 년간 나의 옛 작품들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회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미 완성한 내 작품을 읽을 때 내 안에서는 종종 낯설다는 느낌이 솟아오른다.
모든 작가는 작가이기 앞서 먼저 독자였다는, 소설가 김영하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본인의 작품에 대해서 스스로 독자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 아마도 작가로서 자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작품을 읽으면서 낯설다고 느낀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 말이 아닐까요?계속 자신을 채찍질하는, 작가로서의 자세를 끊임없이 바로잡는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까요?
“사람이란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야 방법이 생기는 거란 말 이외다. 그건 막다른 길에 이르기 전에는 행동을 취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불분명하기 때문이지.”
무릎을 치며 읽은 구절입니다. 정말 이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그래서 항상 ‘왜 좀 더 일찍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하는 것이겠지요.
5. 이 작품을 읽던 중 서점에 가서 성석제님과 위화의 소설집을 각각 한 권씩 구입했습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성석제님의 작품집을 혼자 낄낄대면서 출퇴근길에 읽고 있는데요, 유머러스함과 조금은 모자란듯한 등장인물들이 주는 느낌이 왠지 위화의 작품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공교롭게도 두 분 다 60년생이시네요^^).
문체 및 소재의 독특함과 유머러스함에 있어서 참 닮은 부분이, 긍정적인 부분에서, 참 많은 작가들인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된 것도 공통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