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선생의 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맞벌이이다 보니 집안 일 및 육아를 아내와 같이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이 분주한 편입니다.
특히 글쓰기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고 싶은 요즘은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업작가 선언(?)을 하고 글쓰기에 올인해볼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밤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 좀 하고 아이 씻기고 재우고 난 후 아내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10시가 훌쩍 넘습니다.
그리고 책상에 앉으면 11시가 넘는 경우가 허다하죠, 피로가 몰려와서 글 쓰고 책 읽기 정말 힘듭니다;;
이런 와중에 오래전에 읽었던 '함양과 체찰'이라는, 퇴계 이황 선생의 '마음 공부법'에 관한 책 중에서 집안 일에 임하는 선비의 자세에 대한 부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퇴계 이황은 끊임없이 관직에서 물러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대로 물려 받은 재산 및 처가 쪽에서 받은 것이 있어서 였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노비 150여 명에 연 1,700석 정도가 수확 가능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아무런 걱정 없이 선비 노릇(?)만 하며 살았을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재산과 사람 관리하는 일 말이죠.
얼마나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심했을까요?
얼마나 많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매일매일 했을까요?
그 와중에 공부는 언제 하고 학문적인 소양을 닦았을까요?
사람이 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집안 사람끼리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대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이 확립되어야 도가 생긴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편지에서 "집안일을 맡아 처리하는 것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한 것은 옛사람들의 말과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그대가 집안일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느끼는 것은 일을 맡아할 때 올바른 도리는 소홀히 여기고
이익이 되는 쪽을 좇아갔기 때문에 그리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 정자중에게 답함(2), '함양과 체찰' 중에서 -
당대 최고의 선비였지만 이황은 집안 사람끼리 이해를 증진하고 대화하는 일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즉, 책만 읽고 생각만 하는 우리가 머리 속에 그리는 그런 서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이황 선생은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 등을 통해
우리나라 유학 사상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최고의 유학자입니다.
그런 그가 또한 집안을 잘 다스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알게 되니
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위대한 인물들은 집안일도 위대하게 너끈히 잘해낸 것 같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고 힘들다 불평하기 전에
뭐, 둘 다 잘해보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