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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다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작가의 일, 글 쓰는 삶, 그 일상적인 괴로움

by 생각창고

* 한줄평 : 한 번 꼭 읽어 보세요 ★★★★


요즘 소설가들의 에세이 읽는 데 재미를 붙여서 한 권 두 권 읽고 있는데요,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은 재미도 있으려니와 배우는 것도 많은, 아주 좋은 책입니다.

며칠 동안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분량도 얼마 안되고 재미있어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밀도가 높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굉장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내용인데 인상적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실천하지 않아서겠지요?


김연수(1970~)

굉장히 상식적이고 단순한 단계를 거쳐 작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콜롬비아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 년의 고독'의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을 빌려 글쓰기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젊은 소설가라면, 젊은 작가라면 하루 24시간 내내 딱 한 가지,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생각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인데요, 글쓰기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겁니다.

즉, '매일 글을 쓰고, 한 순간에 작가가 되는 것'이지요. '매일'과'한 순간'의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는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없듯이,

일단 매일 쉬지 않고 써야 재능이 확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겁니다. 소설가가 된 다음에, 작가가 된 다음에 소설과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과 글을 써야, 소설가나 작가가 되는 겁니다.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인데요,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소설가의, 작가의 주된 일이 무엇일까요?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는 것'이 소설가의 주된 일이라고 김 작가께서는 이야기합니다. 글을 쓰고 쓴 글을 다듬고 더 좋게 고치는 것이 작가의 주된 일입니다.

즉, '쓴다 - 좌절한다 - 곰곰이 생각한다 - 다시 쓴다'를 반복하면서 소설 쓰기의 절정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작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쓴다'라는 동사일 뿐입니다. '잘 쓴다'도 '못 쓴다'도 결국에는 같은 동사일 뿐입니다. 잘 못 쓴다고 하더라도 쓰는 한은 그는 소설가이고 작가입니다.


생각도 하지 말고, 구상도 하지 말고 플롯도 짜지 말고, 캐릭터도 만들지 말고, 한 문장이라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지 소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조건 써야 합니다. 읽는 이들의 반응이나 문장이 말이 되는 지 안 되는지 등등 성급한 고민보다는 우선 쓰기를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요즘 닥치는 대로 글을 쏟아내고 있는 저에게 상당히 용기와 위로를 주는 책입니다.


누가 뭐래도 쓰는 게 중요합니다. 비판을 받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무시를 당하더라도 작가는 컨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보먼트 뉴홀이 '사진의 역사'를 썼을때 비판받은 사진가들이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진가들이 더 화를 냈다고 하죠. 네, 차라리 비판을 받아야 하고, 너는 재능이 없어라고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쓴 글로. 김연수 작가가 인용한 말마따나 글을 쓰고 또 그것을 노출하는 것이 '팬티를 벗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작가는 써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건달은 싸워야 할 때 싸워야 건달이고 작가는, 최소한 스스로를 작가라고 규정지었다면

끊임없이 써야 작가입니다.


저자는 소설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요,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과 구성이 이끄는 소설입니다. (구성이 이끄는 소설의 대표적인 장르가 '추리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밝힌 견해인 캐릭터보다는 구성이라는 원칙에 동의합니다만, 김연수 작가는 캐릭터가 끌고 가는 소설을 더 좋아하더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멈춰 있던 저의 소설 평가 기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었습니다.


한 가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김 작가께서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지금까지도 따뜻하게 읽히는 이유가 19세기 영국의 계급에 기반한 사회 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보살피고 스스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 사람은 성장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올리버 트위스트'와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받은 교훈은 이게 아니었거든요.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참고로 저는 디킨스의 광팬입니다~~~)


소설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비극이란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끝나는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지,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결국 문학이란 남들과 다른, 더 나아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걸 뜻하니까.


말하자면 소설가는 텍스트의 디자이너다.


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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