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이 부과한 절망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가까운 친구조차도(경쟁자들은 물론이고) 놀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쏟아낸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열정적으로.죽음의 신을 묶어둘 수만 있다면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앤서니 트롤럽 (1815~1882)
그보다 더한 예술가들은 극히 실무적으로 직업적인 자세를 취한다.예술 창조를 위한 편협한 목표를 가지고 정확하고 가차 없는 질서 속에서 쉼 없이 창작해 나간다. 앤서니 트롤럽은 규칙적으로 하루에 7페이지씩, 한 주에 정확히 49페이지의 원고를 작성했다고 하며, 이 틀에 너무나도 집착한 나머지 아침에 소설 하나를 완성했어도 새 종이 위에 다음 책의 제목을 적고 하루 양을 다 채울 때까지 쉴 새 없이 써내려 갔다고 한다.
-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p.65~66 -
꽤 오래전에 외국의 명문대를 탐방하는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 중에 미국 한 대학의 경영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교수님이 미국 대학 교수들의 운명을 한 줄로 요약하더군요 :
Publish or Perish(논문을 쓰거나, 사멸하거나)
논문을 기준만큼 일정 수준의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publish하지 못하면평생 조교수 자리를 면치 못하는 대학 교수이기에, 말 그대로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양질의 논문을 써야 하는 것이지요.
작가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글을 쓰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오늘 회식을 했습니다.맛난 거 먹고 기분 좋게 떠들고 집에 들어오니글을 써야겠다는 의욕이 사라지더군요.
배도 부르고 피곤하기도 하고, 긴장이 좀 풀어진 것도 있고요.순간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절실함이 없구나'.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영혼과 마음이 허기가 져서 참을 수 없어야 하는데요,배가 부르니까 참아지더군요, 아직 멀었습니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 이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글을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두려워야 할 것 같습니다.그 두려움이 작가로서의 생존을 지탱하는 최고의 밑바탕이 될 것이고그 간절함이 작가로서의 내 생명을 하루하루 유지시켜 줄 것 입니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 한 달, 일 년, 내 인생이 됩니다.
글을 쓰지 않은, 쓰지 않고도 아무런 찔림이 없는 오늘 하루가혹시 압니까, 내 남은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출발점이 될 지.
글이 너무 무거워졌습니다.
스스로를 질책하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솔직히 스스로 보기에 글쓰기에 재능은 그닥 있어 보이지 않는데성실함과 노력이라는 '재능'마저 없다면 정말 작가의 길을 가는데절망만 할 것 같아서, 이 두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자신을 다그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