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하루쯤, 지금의 나 말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본다면 어떨까?
가령, 야구장 한가운데에서 환하게 웃으며 응원하는 치어리더가 된다면?
말만 해도 웃음이 난다.
하지만 이 상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금 나는 워킹맘으로서, 아침부터 밤까지 늘 계산하고, 조율하고, 참아내며 산다.
가족을 챙기고, 직장에선 책임을 다하고, 틈틈이 내 감정을 뒤로 미룬 채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를 견딘다.
그렇게 쌓이는 피로감 속에서 가끔 ‘나도 좀 환하게 빛나보고 싶다’는 욕망이 얼굴을 들이민다.
사실 나는 관심받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나를 주목하고, 인정해주고, 예쁘다 말해줄 때 내 안에 오래된 소녀가 기지개를 켠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여유도, 시간도, 솔직히 용기도 점점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속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나, 무대 위에서 빛나는 전문가들의 삶은 내게 늘 완벽하고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이 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야구장의 치어리더.
운동장 위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겐 동경의 결정체다.
긴 팔과 다리를 뻗어 우아하게 춤추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활력을 전하는 그들.
그 모습은 그저 예쁘고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련한 상상을 자극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치어리더가 되기 위한 피나는 연습도, 무대에 서기 위한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그 삶은 그냥 내 머릿속 작은 영화처럼, ‘내가 아닌 삶’으로 존재한다.
때로는 그게 참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도 매일 나름의 무대에 서 있다.
가정이라는 작은 무대, 회사라는 거대한 경기장 속에서 나는 늘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때로는 앞장서기도 한다.
치어리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삶도 꽤 멋지지 않은가.
물론 여전히 가끔은 상상 속 무대 위로 도망치고 싶다.
팔다리가 쭉쭉 뻗고, 조금만 움직여도 춤선이 살아 있는 20대의 내가 되어, 관중의 함성을 받으며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그 환상은 이제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그건 지금의 나를 도피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잠시 웃고, 쉬고, 나를 다시 사랑하기 위한 작은 휴식 같은 상상이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무대 위에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이 삶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가장 근사한 역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