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은 있었지만, 이름은 없었다.

by 이영미

명함은 있었지만, 이름은 없었다.

이 간단한 문장이 어느 날 문득,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는 30년 동안 ‘hy(구)한국야쿠르트 점장’이라는 명함을 가슴에 달고 살아왔다.

그 명함은 나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얼굴이었고, 나의 책임이었으며, 나의 하루였다.


하지만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그 명함 속 직책으로만 살아온 건 아닐까?”

누군가 내게 이름을 불러주었는지,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자주 불러주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명함은 분명 있었지만, 이름은 오랫동안 조용히 뒤로 밀려나 있었다.


10대,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조곤조곤 문제를 알려주는 것이 즐거웠고,

무언가를 이해하게 만드는 그 순간의 반짝이는 눈빛이 참 좋았다.

나도 언젠가 교단에 서고 싶었다.

선생님은 늘 정답을 아는 사람 같았고,

나는 존경받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현실 앞에서 조용히 접어야 했다.

가족의 생계와 나의 위치, 그리고 손에 쥐어진 선택지 앞에서

나는 ‘꿈’이 아닌 ‘일’을 택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이름보다 명함 속 직책이 더 크게 불리기 시작한 건.


20대,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조용한 낡은 카페에 앉아,

혼자 시집을 읽고 마음을 기록하던 그 시간들이 내게는 참 소중했다.

세상의 부조리를 뾰족한 펜 끝에 실어

짧은 한 줄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었다.


하지만 시인으로 살아가기엔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차가웠다.

나는 조용히 공책을 덮고,

누군가가 건넨 명함을 받아들였다.

이름은 서랍 속에 넣고, 직책은 가슴에 달았다.


30대, 나는 엄마이자 아내였다.

아이가 처음으로 내 이름 대신 “엄마”라고 불렀을 때,

그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이름은 점점 사라졌다.

모든 하루가 가족을 위한 시간이 되었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현명한 아내,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 역할이 너무 소중했기에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이영미’라는 이름은

그 바쁨 속에서 천천히, 조용히 잊혀져갔다.


40대, 나는 인생 선배가 되었다.

후배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말보다는 경청으로,

조언보다는 공감으로 빛나고 싶었다.

그 시간들 또한 보람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언니’, ‘점장님’으로 불릴 뿐이었다.

내 이름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만 들려왔다.


그리고 지금, 50대의 나는 ‘이영미’라는 이름을 다시 꺼낸다.

뜨거웠던 여름, 눈 덮인 겨울을 지나

나는 한 명의 여성으로, 인간으로

‘이영미’로 살아가고 싶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점장이라는 명함을 넘어

이제는 나를 위해 노래하고, 걷고, 웃고 싶다.

잠시 내려놓고 싶다.

늘 타인을 먼저 불러주느라 잊고 있던 나의 이름을

이제는 내가 가장 먼저 불러주고 싶다.


30년 동안 나는 수많은 명함을 받았고, 그만큼 많은 책임도 안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 오랜 시간, 묵묵히 명함 뒤에 서 있었던 나의 이름.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나를 지켜온 진짜 나.

‘이영미’라는 존재가 가장 오래, 가장 충실하게 나와 함께 걸어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말해본다.

“이영미, 참 고맙다.

참 잘 버텨줬고, 참 잘 살아왔어.

이제는 너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불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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