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기쁘면 눈이 웃고, 불편하면 표정이 먼저 굳는다.
좋고 싫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다 보니, 어떤 이에게는 솔직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또 다른 이에게는 감정이 부담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표현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유독 부러워한다.
기분 나쁘지 않게 "싫다"고 말하고, 단호하면서도 정중하게 "아니오"라고 선을 긋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보면 꼭 묻고 싶어진다.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말할 수 있어요?”
거절도, 의견 표명도 결국엔 기술이다.
단어의 선택, 목소리의 높낮이, 그리고 그 말에 담긴 태도.
나는 아직 그런 기술이 서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유시민 작가의 언어를 좋아했다.
그의 말에는 논리가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기본적인 존중이 있었다.
비판을 하더라도 인신공격이 아닌 해석의 틀 안에서, 태도를 지적하되 사람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려는 시선.
그런 태도가 늘 인상 깊었다.
하지만 최근, 그가 한 방송에서 대선 후보의 배우자에 대해 한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그 인생에서는 갈 수 없는 자리에 올랐다”, “발이 공중에 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발언을 학벌주의적, 여성 비하적인 표현이라며 비판했다.
여성단체는 사과를 요구했고, 정치권에서도 날 선 반응이 이어졌다.
나는 그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가 말한 건 어쩌면, 우리가 늘 익숙해져버린 현실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남편의 회사 행사에 동석할 때, 나는 종종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듣는다.
그 안엔 ‘남편의 사회적 위치’가 곧 ‘나의 위상’을 결정짓는 듯한 시선이 묻어난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말투가 조심스러워지고 자세도 단정해진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맞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진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위치를 부여하는지를 실감한다.
그래서 유시민 작가의 발언이 나에게는 단순한 폄하가 아니라,
익숙함에 던진 불편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다만, 그 질문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들리진 않았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표현은 의도만큼이나 방식도 중요하다.
아무리 정확한 해석이라 해도,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았다면 말의 실패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감정을 전하는 다리다.
그 다리는 상대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때로는 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의 온도에 귀 기울인다.
말이 다정해지는 법, 다름을 존중하며 말하는 법, 그리고
말이 닿을 때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