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삶, 충분한 나

by 이영미

어느덧 나도 50대 중반에 들어섰다.

요즘은 거울을 보다 보면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의 엄마가 떠오른다.


항상 단정한 차림에 흐트러짐 없는 집안, 하루 세끼를 꼬박 손수 차리며

일과 살림, 육아를 고요하게 병행하던 모습.

엄마는 언제나 단단했고, 빈틈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엄마를 우상처럼 바라봤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엄마가 되면 저절로 엄마처럼 될 줄 알았다.

현명하고 강인하고, 흔들림 없이 모든 걸 해내는 사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침마다 허둥지둥 밥상을 차리고, 쏟아진 국물을 닦아내며 아이를 깨우고,

퇴근한 밤에는 어지럽혀진 거실을 바라보다 또 오늘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깊은 한숨이 나온다.


엄마는 모든 걸 그렇게도 자연스럽게 해냈는데, 나는 왜 이토록 서툴기만 할까.

그런 생각이 자꾸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의 그늘 안에서 한참이나 작아진 채로 있었다.


어느 날, 대학생이 된 아들에게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엄마는 항상 할머니처럼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는데,

그 길은 엄마한테는 너무 멀리 가버린 것 같아서 좀 슬프다.”

아들은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이미 슈퍼우먼이에요.

제가 보기엔 엄마처럼 대단한 사람이 없어요.

50 넘은 나이에도 일 즐기시고, 20대 아들이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엄마는 자식농사도, 삶도 멋지게 잘 해오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 망설였지만, 그동안 누구에게도 들은 적 없던

그 한마디가 묵직한 위로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해주는 아들이 참 고마웠다.

군대를 제대하고 아들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반을 운동하고 학교를 간다.

아들의 생활 루틴은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그 단단한 습관이

내 삶을 보고 배운 결과라고 말해줄 때,

나는 나조차 몰랐던 나의 영향력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낸 내가 누군가에게는 방향이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조용히 일으켜 세웠다.

요즘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엄마로서 잘 살고 있는가?”에서 “나는 나로서도 잘 살고 있는가?”로

질문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30년 가까이 직장인으로 살아오면서

매일 아침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급히 출근 준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시간들.

퇴근 후엔 지친 몸으로 저녁을 차리고,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늘 ‘엄마’였고, ‘직장인’이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던 ‘나’는 점점 희미해진 채로,

늘 뒤로 미뤄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성장했고, ‘누구의 엄마’라는 말보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엄마가 되기 전의 나’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분명히 나였던 시간들.

지금 나는 그때의 나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내밀고 있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돌아가던 루틴 속에서도 내 마음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아주 작은 기쁨과 고요함을 다시 찾아가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엄마가 되고, 직장인이 되고, 가정을 책임지며 달려온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종종 잊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등불이 되었다면 그것이면,

나는 오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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