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릴 때, 밝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그건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살아가는 방식의 기준이자, 내 존재를 증명받고 싶은 욕구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늘 애썼다.
내가 생각한 ‘좋은 사람’은 이런 모습이었다.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며,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하고,
때로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참고 넘어가는 사람.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켰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괜찮은 척 웃었으며,
남들의 눈치를 보며,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적이 있었을까?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깰까 봐 참았던 순간, 도움이 필요했지만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놓치기 싫어서 조용히 혼자 감당했던 날들 말이다.
그렇게 살면, 누구에게나 “참 좋은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후배의 말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사람은 원래 다 좋다고만 말해요. 그래서 솔직한 느낌이 없어요. 신뢰가 잘 안 가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분명 배려했고, 참았고, 잘하려고 애썼는데…그 결과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라니.
한 번은 회의 시간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업안에 마음속으론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닌 것 같아요”라는 한 마디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불만 많은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그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무색무취한 존재가 되어갔다.
항상 괜찮다 하고, 모두의 편을 드는 사람.
하지만 속마음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멀게 느껴지는 사람.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보여준 ‘좋음’은 진심에서 우러난 배려라기보다,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만들어낸
맞춤형 착함이었다는 것을.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방식은 결국 내 감정도, 관계도 희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오십이 넘은 지금,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정말 그런 모습이었을까.
한때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솔로몬처럼 지혜로워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깊고 넉넉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삶이 단단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없이 흘러간 세월은 내 마음의 여백을 채우지 못한 채 스쳐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그동안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속으로 수없이 많은 말을 삼켜왔던 시간들이
이제는 나의 몸짓과 표정, 말투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는 걸.
하지만 이제는, 그 ‘착함’에만 나를 가두지 않으려 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솔직하게, 부드럽지만 나의 경계를 지키며,
갈등을 피하지 않되,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보다 이제는 '진짜 나다운 사람'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내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