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시 걷는 새벽

by 이영미

새벽 5시, 알람이 울리면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아직 잠이 덜 깼지만,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에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는다.

6시가 되면 출근길에 오른다.

나의 아침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새벽 출근이 좋아졌다.


조용한 도로, 적막한 거리,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낀다. 어둑어둑한 새벽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둠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새벽 공기가 얼굴을 스칠 때의 상쾌함이 좋아 창문을 살짝 열고 운전한다. 차 안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공기가 내 안을 맑게 씻어주는 기분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출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않을까.‘


하루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침을 연다. 물론 매일이 평온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삶은 늘 예측할 수 없는 파도를 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몸이 무겁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려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이런 감사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깊은 우울감과 상실감 속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동생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은 나를 무너뜨렸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했고, 잠들면 다시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랄 만큼 삶이 버거웠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삶은 멈추지 않았고, 나도 조금씩 다시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이별의 아픔은 서서히 희미해졌고, 삶의 감각도 아주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지만, 그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고 견뎌내는지는 각자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치유할 방법을 조심스럽게 찾아 나섰다. 누군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또 누군가는 일에 몰두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나 역시 깊은 우울감 속에서 버티기 힘들었던 시기에 상담을 받았고, 조금씩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를 이해하려 애썼다. 처음엔 어렵고 낯설었지만, 내 이야기를 꺼내고 이해받는 경험은 서서히 숨통을 틔워주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회복의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그 길을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나는 그 마음을 붙잡은 채, 아주 작은 일상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 혼자 밥 챙겨 먹어보기, 그리고 매일 짧게나마 글을 써보기.

처음엔 별 의미 없어 보였지만, 그 소소한 시도들이 마음속 깊이 쌓여 있던 슬픔과 무기력함을 천천히 녹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그 실천들은 내게 회복의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무너졌던 마음은 조용히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고, 멈춰 있던 삶에도 서서히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의 규칙적인 일상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며, 나는 조금씩 삶의 리듬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리듬을 만들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일’이었다.

내게 일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조용한 구조이자,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준 버팀목이었다.


삶은 때때로 우리를 시험하고, 예상치 못한 아픔을 건넨다. 그럴 때마다 중요한 건 완벽하지 않아도, 다시 일어나 보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작은 시도가 때론 가장 큰 변화가 된다. 나도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움직여보려 했을 뿐이다. 그 과정은 더디고 서툴렀지만, 아주 조금씩 내 안의 여유와 단단함이 자라나는 걸 느꼈다.


이별과 상실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배워가고, 다시 살아가려는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 더 이상 어제를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 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 고통은 어쩌면 성장을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견디며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삶의 의미를 배워간다.


이제는 매일 아침을 맞으며 감사함을 떠올린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일지라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삶은 여전히 크고 작은 파도를 몰고 오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오늘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출근길에 오른다. 삶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천천히 자라날 수 있다. 그 과정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새벽을 맞이하고 있는가?

꼭 크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새벽이면 된다.

혹시 지금, 조용히 하루를 견디고 있다면,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그 마음은 분명 누군가에게 닿고 있을 것이다.


성장은 늘 조용히 다가온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겠다는 그 다짐 속에 이미 충분한 용기가 담겨 있으니까.

여러분의 오늘이 조금은 가볍고, 따뜻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마음이, 또 다른 새벽을 여는 조용한 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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