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삶 앞에서

by 이영미

15년 전까지 나는 매년 신점을 보러 다녔다.

새해가 되면 한 해의 운세를 점쳤고, 조심할 것과 기대할 것을 나눴다.

고민이 생기면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기꺼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재미 삼아 간다며 스스로를 달랬지만, 실은 누군가 내 인생의 방향을 대신 정해주길 바랐다.

불확실한 삶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확실한 말’을 얻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점집에서도 그랬다.

그날도 마음이 복잡했고, 어디에다 나를 놓아야 할지 몰라 누군가의 입을 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들으면 안 될 말을 듣고 말았다.

“동생은 47세에 갈 운명이야.”

그 말은 예언이 아니라 선고처럼 들렸다.

그 순간부터, 동생의 삶은 내 안에서 ‘끝이 정해진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 동생은 병을 이겨내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잘 견디며 회복 중이었고, 병원에서도 긍정적인 말만 해주었다.

식욕도 돌아오고, 얼굴빛도 나아졌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안심하고 있었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지 못했다기보다,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마음 깊이 숨겨 지켜보고 있었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라는 말 뒤에, ‘혹시나’라는 조용한 두려움이 늘 붙어 다녔다.


그리고 결국, 동생은 정말로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어떤 점집에도 가지 않았다.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운명’이라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가둬버리는지,

그 말을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드는지, 너무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책감은 조용히, 오래도록 남았다.

혹시 내가 그 말을 너무 믿어서, 그 믿음이 동생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 건 아닐까.

그 한 마디에 흔들리며, 내 안에서 이미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믿음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때론 그 사람을 묶어놓기도 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오랜 시간 흔들렸다.

동생을 잃은 아픔보다 더 오래 남은 건, 내가 한 말도, 하지 않은 말도 모두 후회로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불안을 덜기 위해 누군가의 단단한 목소리에 기대고 싶어진다.

‘정해진 길’이라는 말이 위로처럼 들릴 때가 있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니까.

믿는 순간, 책임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확신은 늘 누군가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결국, 내 삶을 타인의 말에 맡기고 있던 거였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 말이 내 안에서 운명이 되었던 순간부터

나는 동생의 삶을 충분히 믿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가장 미안했던 부분이다.


나는 아직도 흔들린다.

그러나 이제는, 조심스럽게라도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내가 겪은 시간, 감당한 슬픔, 그리고 꿋꿋이 살아낸 하루들이

어쩌면 가장 정확한 나의 길잡이일지도 모르니까.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나는 그 불확실함을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말로 덮지 않으려 한다.

그 말이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나를 가두는 벽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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