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만드는 균열

by 이영미

“나 하나쯤이야.”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를 넘긴다.

집 안에 쌓인 일을 보고도 ‘오늘은 그냥 지나가자’ 하고, 회의 시간에 핸드폰을 슬쩍 보면서도,

팀 프로젝트에서 조금 덜 신경 쓰면서도 속으로 변명처럼 말한다.

“나 하나쯤이야.”

그 말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마법 같은 주문이다.

처음엔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주문이 만들어내는 균열을 너무도 잘 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의 태도가 분위기를 바꾸고,

한 사람의 책임감이 흐름을 만든다.

그 책임감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린다.


나는 오랫동안 조직 안에서 살아왔다.

성과를 쫓아 달리는 하루, 마감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함께 달리는 팀원들.

그 안에서 늘 느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퍼지는 순간, 그 팀은 더 이상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시간에 맞춰 보고서를 내지 않았고, 누군가는 리더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과는 늘 같았다.

모두가 애썼지만, 결국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성과. 그 뒤에 남는 건 서운함과 불신,

그리고 서로를 향한 작은 원망뿐이었다.


가정도 다르지 않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어렸을 때,

“오늘은 피곤하니까 너 혼자 놀아.”

“엄마는 지금 바쁘니까 이따 얘기하자.”

그렇게 흘려보낸 순간들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물론 그땐 어쩔 수 없었다.

일도, 집도, 아이도 모두 완벽하게 감당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어쩔 수 없었음’ 속에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부터라도.’

그게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하니까.


조동화 시인의 시 「나 하나 꽃피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이 얼마나 단단하고도 따뜻한 말인가.

나 하나의 변화가 무의미하지 않다고, 나의 작은 실천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해준다.


좋은 영향력도 그렇게 퍼져나간다.

작은 친절 하나, 조금의 책임감, 지켜낸 원칙 하나가 결국 우리 모두를 지키는 커다란 울타리가 된다.


일도, 관계도, 삶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작은 정성과 책임감이 공기를 바꾸고, 분위기를 만들고, 결국 모두를 감싸는 온기가 된다.


50대가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중심에서 박수받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품을 수 있는 따뜻함이 있고, 바꿀 수 있는 공기의 결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게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을까.

무심코 지나친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한 균열을 내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작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피어날 첫 번째 꽃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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