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로만 있고 싶은 날

by 이영미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하루쯤은 세상에 나 혼자 남아 있는 날을.
누구의 딸도, 며느리도, 아내도, 엄마도 아닌 그저 ‘나’로만 존재하는 시간.


어릴 때부터 나는 잘하고 싶었다.
가정에서는 효녀라 불리고 싶었고, 결혼 후에는 성실한 며느리, 헌신적인 아내,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동료, 책임감 있는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다.

욕심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그냥 나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만큼 애썼다.


하지만 살다 보니, 완벽함은 신기루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자주 실수했고, 때로는 지쳤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꿋꿋이 서 있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끝끝내 나를 조여왔다.
늘 긴장했고, 여유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 처음에는 고백처럼, 나중엔 위로처럼.
조금씩, 나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덜 착한 딸이어도, 가끔은 실수하는 엄마여도, 내조의 여왕이 아니어도,
조금 부족한 며느리여도 괜찮다고.

글을 쓰며 나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 누구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목소리로. 흔들리고, 삐걱거리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금도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여전히 나다운 무언가를 지켜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나를 믿는다.
비로소, 그것이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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