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라는 말 앞에서

by 이영미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단단해진다.

예전에는 내가 꽤 유연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익숙한 방식에 안도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내 안의 고집이 천천히 자라고 있었다는 걸 느낀다.

익숙함은 때로 변화를 멀리하게 만든다.


젊은 시절엔 어른들의 말이 곧 정답이라 믿었다.

그들의 조언엔 늘 이유가 있을 것 같았고,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라는 한마디에

묵묵히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

지시보다 기다림으로, 말보다 태도로 가르쳐주던 분들.

그들은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해냈고, 그 모습만으로 나에게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나도 큰소리 내지 않고 한 걸음씩 걸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특히 후배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보이고 있을까.

다정하지만 느슨하지 않고, 단단하지만 경직되지 않은 사람.

혹시 나도 모르게 “요즘 애들은 말이야”라는 말을 마음속 어딘가에 품고 있지는 않을까.


얼마 전, 후배 한 명이 말했다.

“과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문득 이유가 궁금해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나이에도 자리를 지키고, 꾸준히 일하는 모습이 멋져요.”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수록 조직 안에서 자리를 지킨다는 일이 얼마나 버겁고 위태로운 일인지를.

‘그 나이에도’라는 말속에는 이 사회가 나이 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용히 스며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을까.

단지 오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 역시 수없이 흔들렸고, 마음속으로는 몇 번씩 그만두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어설픈 날에도, 지치는 날에도 내가 맡은 자리를 지키려 애썼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열정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태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꾸준한 마음이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었고

어떤 이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열정이 언제나 빛났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나를 다그치기도 했고, 멈추는 법을 잊게 만들기도 했다.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누군가 흔들릴 때

“괜찮다”기보다는 “함께 버텨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가르치기보다는 옆에 서주는 사람.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


나는 지금 그런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놓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나를 좋은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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