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나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뽀얀 피부가 자랑이었다.
긴 머리와 단정한 이목구비, 그리고 거울 속에서 빛나던 깨끗한 피부는 내 자존감을 지켜주는 방패였다.
또한 아버지의 필적을 빼닮은 듯한 또박또박한 글씨는 교실 칠판 위에서 자그마한 칭찬을 자아냈고,
나는 그 작은 인정 속에서 자라났다.
20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부모님께 물려받은 경제관념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
첫 월급을 받고 만든 적금 통장, 적금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숫자들 속에서,
나는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배웠다.
넉넉하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게 사는 법.
부모님의 가르침은 내 삶의 뿌리가 되어 있었다.
30대의 나는 부모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새벽 출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늘 밥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정성.
출근복의 주름을 펴주시던 손길.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챙기는 게 사랑이야.”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처럼,
어느 겨울날 아버지는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목도리 세 개를 꺼내어 내미셨다.
그 순간, 어머니는 조용히 웃으며 그중 하나를 아버지의 목에 천천히 감아주셨다.
따뜻함은 말보다 먼저, 두 사람 사이를 덮었다.
나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40대가 되자 거울 속의 나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피부도 흐려지고, 글씨도 예전만큼 곧지 않았다.
경제관념은 ‘모으는 법’에서 ‘쓰는 법’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고,
부부 사이의 대화는 점점 짧아지고, 서로의 존재는 ‘익숙함’이라는 말로 포장된 채
무뎌지고 있었다.
그제야 문득 떠올랐다.
부모님은 그렇게 서로를 당연히 여기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나는 과연, 그분들이 남긴 삶의 태도를 지금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50대가 된 지금, 나는 그 시절 부모님께서 내게 남겨주신 것들을 내 아이에게도 전하고 싶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흐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방식,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오래된 앨범을 펼쳐보았다.
젊은 아버지의 미소, 밥상 앞에서 웃고 있는 어린 나.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부모님이 내게 남긴 것은 피부도, 글씨도, 돈도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했다.
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직접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일부터. 사랑은 그렇게 다시 이어진다.
부모님의 방식대로, 내 아이에게도 내 방식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