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비로소, 여유를 말하다

by 이영미

“나는 언제쯤 여유를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30년 동안 조직 속에서, 그리고 25년 동안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오며

문득, 그런 질문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삶이라는 긴 여정을 돌아보며 나 자신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과연 나답게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회사에서의 하루는 늘 ‘숫자’와의 싸움이었다.

매월 마감에 쫓기고, 실적 앞에서 숨이 턱 막히던 날들.

퇴근 후에도 업무 전화를 이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아들이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 있다.

“엄마도 좀 쉬세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가정 안에서도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역할’로 존재했다.

아내, 엄마, 며느리.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앞섰고,

‘나’라는 사람은 늘 마지막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아쉽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매일이 고단했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순간들도 함께 있었다.

아이가 처음 걸음을 뗄 때의 떨림, 남편과 말없이 나눈 눈빛,

시댁과 친정 사이를 오가며 지켜낸 평온한 하루들.

그런 작은 순간들이 내게 묵묵히 삶을 살아낼 힘이 되어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30년 가까이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예전처럼 조급하지 않다.

조금 느려도, 때로는 뒤처져 보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갈지,

혼란 속에서도 어디쯤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을지를.

아마도 그게, 경험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조용한 여유가 아닐까.

결혼생활도 2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참 어려웠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일.

서로의 생각, 말투, 습관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충돌의 씨앗이 되곤 했다.

그런 과정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씩 맞춰갔다.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 때로는 한 발 물러서며

조용히 기다리는 법도 배웠다.

아이를 함께 키우며 ‘함께’라는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어떤 책임감을 품고 있는지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남편이라는 존재가

참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즘엔 문득 아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부모님을 보며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삶의 흐름 속에서 ‘나’를 또렷이 바라보게 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조금씩 여유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고,

조금 부족해도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삶이 흔들릴 때에도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수많은 날들을 지나며 내가 나에게 조용히 건넨 응원일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여유는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내게 준 가장 고마운 선물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여유’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떠오르는 그 감정이,

어쩌면 당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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