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자유를 묻다

by 이영미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잠시 몸을 쉬게 하는 휴식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도전이다. 나에게 여행은 늘 변해왔다.


아이가 어릴 때는 좋은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떠났고, 남들이 간다 하니 우리도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해외로 향했다. 괌과 사이판, 호주와 유럽까지. 사진 속 우리는 늘 웃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여행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선택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그 낯선 곳에서 본 풍경과 경험이 내 기억 깊숙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TV에서 내가 다녀온 장면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아, 저기 나도 있었지”라는 감탄이 흘러나오고, 그때의 공기와 기분이 다시 살아난다.


세월이 흐르며 여행의 방식도 달라졌다. 아이는 자랐고, 나는 나이가 들었다. 설렘보다 피로가 먼저 밀려오고, 시간에 쫓기는 일정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다르게 하고 싶었다. 나는 ‘자유’라는 주제를 붙잡았다. 구속 없는 여행,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한 여행. 그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주도였다.


제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발걸음이 향하는 곳, 사려니숲. 숲길에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흙길을 밟는 촉감, 나무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살, 풀잎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내음이 나를 감싼다. 나는 흙과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인데도, 이곳에서는 그 모든 것마저 편안하게 느껴진다. 머리는 거부하지만 몸은 숲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것이 자유의 다른 얼굴 아닐까. 불편함조차 품어내며 평안을 주는 힘. 숲은 내게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나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머물렀다. 바로 남편이었다.

나는 휴가만큼은 휴대폰 없는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늘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카톡으로 이어지는 업무 지시. 나는 점점 짜증이 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정작 남편은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휴가 중임을 말하지도 않았고, 그저 묵묵히 전화를 받고 답을 이어갔다.


나는 달랐다. 전화를 받자마자 “지금 휴가 중입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지금은 처리할 수 없다는 태도로 단절을 택했다. 나의 자유는 관계와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해방이었지만, 남편의 자유는 책임을 품고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자유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자유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단절일까, 아니면 관계를 감당하면서도 마음의 균형을 지켜내는 힘일까. 숲은 나에게 전자를, 남편은 후자를 보여주었다.


결국 여행은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남겼다.

나는 어떤 자유를 원하는가?

그리고 당신에게 자유는 어떤 모습일까.

사려니숲의 고요한 나무들은 그 질문을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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