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하게 일해야 한다는 말

by 이영미

탁월하게 일해야 한다는 말.

나는 왜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는 걸까.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목소리가 내 곁을 스쳐갔지만, 그날 회의실에서 들었던 한마디만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오래된 책갈피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석 달의 공백

26년 전이었다.
그때는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는 게 자연스러운 시절이었다. 아이를 낳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온다는 건 흔치 않았다. 출산휴가는 고작 석 달.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모유 수유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회사는 자연스럽게 퇴사를 권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일을 좋아했고, 인정받는 순간의 기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자리를 대신한 건 스무 살 아르바이트 직원이었다. 키도 크고 활기찼다. 동료들과 상사들이 모두 예뻐했고, 실수가 있어도 괜찮다며 웃어넘겼다. 그 모습을 보며 불안과 안도가 동시에 찾아왔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없는 동안, 회사는 굴러갈 거라 믿었다.


복직 첫날의 대화

복직 첫날.
점심을 마친 뒤 과장님이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이 무너질 듯 쌓여 있었다. 바인더에서 삐져나온 종이들이 지난 3개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뒤 과장님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지만, 곧 표정을 거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미야,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네. 잘 들어봐.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이 성공하려면 길은 하나야. 이제 얼굴도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여자로서 이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탁월하게 일을 잘해야 한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서류 더미를 내 앞으로 밀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에서는 작은 결심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


‘남들보다 탁월하게 일해야 한다.’


그 말이 남긴 것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업무도 달라지고, 부서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 있다. 그때 나의 상사의 말은, 어쩌면 단순히 내게 일을 맡기기 위한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 한마디는 내 삶을 지탱하는 문장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를 붙들어 준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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