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로 발을 내디뎠다.
그때 내 이름 앞에 붙은 첫 직함은 ‘고졸 여직원’이었다.
첫 월급봉투를 받아 들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봉투 속의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한 집안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오랜만에 식탁을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상 위의 반찬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부모님의 눈가가 살짝 젖어 있던 모습은, 내게 책임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부모의 보호를 받는 딸이 아니라,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직의 질서와 규칙 속에 뿌리내렸다. 선배에게 배우고, 후배를 챙기며, 조금씩 자리 잡아갔다. 하지만 세상은 늘 변화를 몰고 왔다. 어느 날부터 회사의 채용 공고에서 ‘고졸 여직원’이라는 항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출발선이 같던 동료들은 점차 줄어들고, 학벌은 조직 안에서 더욱 견고한 벽이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묻곤 했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고졸이라는 단어는 내게 족쇄이자 동시에 자극이었다. 그것은 나를 움츠리게 했지만, 동시에 더 단단해지도록 몰아세웠다. 일반직에서 종합직으로, 불가능하다 여겨지던 자리까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회의 자료를 작성할 때마다 단어 하나에도 예민해졌다. 발표 자리에서는 내 목소리가 떨릴까 봐 전날 밤 수십 번을 연습했다. 책 속 문장을 베껴 노트에 옮겨 적으며, 교양인의 옷을 걸치듯 스스로를 단련했다. 주말이면 음악회와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사실 그것은 배움의 기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졸’이라는 두 글자를 감추려는 또 다른 전쟁이었다.
그렇게 30년을 버텼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문득 질문이 찾아왔다.
“내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뜻밖에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내 경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업무에서 겪은 실패와 성공, 작은 깨달음을 기록하며 매뉴얼을 만들었다. 처음엔 그저 나를 위한 정리였다. 하지만 동료들이 그것을 반가워하며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알게 되었다. 내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이어리 구석에 메모했던 단상들이 하나의 기록이 되었고, 기록은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 원고를 처음 인쇄해 손에 쥐던 순간, 내 삶의 긴 여정이 작은 활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느낀 벅참은, 회사에서 어떤 직함을 얻었을 때보다도 더 깊었다.
글은 나를 달래주었고, 버티게 해 주었으며, 마침내 나를 작가라는 또 다른 길로 이끌었다. 세월 동안 쌓인 경험과 마음속 무수한 이야기들이 글을 통해 빛을 얻었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단순히 한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지금, 작가의 꿈을 꾼다. 거창한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나온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이 나를 지탱했듯, 언젠가 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묵묵히 쌓아온 시간이 결국 글이 되었듯, 이 글 또한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응원하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