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용기와 50대의 안락함
사이에서

by 이영미

얼마 전, 우연히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를 다시 보게 되었다. 세월을 두고 다시 만난 영화는, 제게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예전엔 들려주지 않던 이야기를 속삭이듯, 이번엔 삶에 관한 묵직한 질문들을 건네왔다.


트루먼은 태어나면서부터 거대한 세트장 속에서 살아온 남자다. 주변의 인물도, 일상적인 사건도, 심지어 날씨조차도 철저히 조작된 세상. 그는 오랫동안 그 안에서 웃고 울며 살아왔지만, 언젠가부터 모든 것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편안하지만 가짜인 세상과 두렵지만 진짜인 세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20대 후반,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나는 트루먼의 선택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였다. 낡은 무대를 뒤로하고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희망과 해방 그 자체였다. 나 또한 세상이 정해놓은 틀을 깨고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으니까. 트루먼이 문을 열고 나아가던 장면은, 불확실해도 내 삶을 개척하겠다는 젊음의 패기와 그대로 겹쳐졌다. 자유란 바로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용기라 믿었다.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 다시 본 <트루먼 쇼>는 전혀 다른 색깔로 다가왔다. 스크린 속 그는 여전히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굳이 저 풍랑을 마주해야 할까? 어쩌면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수없이 파도에 부딪히고, 크고 작은 선택의 무게에 지쳐본 나에게,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은 설레기보다 버겁게 다가왔다. 젊은 날에는 찬란하게만 보였던 트루먼의 용기가, 이제는 때때로 그저 안락함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일깨우기도 했다.


세월은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20대의 나는 ‘자유를 향한 용기’에 열광했지만, 50대의 나는 ‘진실의 무게’와 ‘안락함의 유혹’을 동시에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트루먼의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마다 우리가 어떤 삶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는가의 문제로 다가온다.


영화는 여전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혹시 누군가가 짜놓은 무대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스스로 만든 틀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또 묻는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눈을 감은 채 안락한 가짜의 평온에 기대고 싶은가.”


<트루먼 쇼>는 제 삶의 한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20대에는 열정으로, 50대에는 공감과 피로로 바라본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울림을 남겼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무대에서 배우이자 관객으로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앞으로의 장면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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